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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다층석탑(神勒寺 多層石塔).경기 여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여주 신륵사 다층석탑(神勒寺 多層石塔).경기 여주

푸른새벽* 2007. 1. 6. 23:46

 

 

 

 

 

 

 

 

 

 

 

 

신륵사 다층석탑(神勒寺 多層石塔)


신륵사 금당 앞에 아담하게 놓인 다층석탑은 흰 대리석재라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형식은 방형의 일반형 석탑에 기단부를 2층으로 구성하고 그 위에 여러 층을 거듭해 얹은 탑신부를 받고 있다
여기까지는 신라나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양식을 취하고 있다
즉 조선 초기 석조공예의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조형기법이 나타나 주목된다


지대석 위로는 상.하의 갑석에 단엽의 복련을 둘렀으며 매우 얕은 하층의 기단면석은 네 모서리에 형식적인 우주를 모각하였고
4면에는 물결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그 위로 중후한 느낌을 줄 만큼 두꺼운 하갑석이 놓여 있고,
상층기단 면석에는 신라나 고려에서는 볼 수 없는 비룡문과 연화문.물결무늬.구름무늬 등의 조각이
능숙한 솜씨로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둔중함을 덜어주고 있다


석탑에는 비룡을  조각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예이다
유독 신륵사 탑에서 그 섬세한 기교를 보이고 있는데,이는 어쩌면 신륵사 설화 속에 등장하는 용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리석질이라는 고급스런 소재에 이들 섬세한 조각을 곁들여 탑의 격조를 한층 높여준다


8층으로 구성된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차례로 얹고 지붕돌의 양쪽에 우주를 두었을 뿐 다른 조각은 전혀 없다
몸돌이 지붕돌의 두께와 비등할 만큼 두께가 얇고 체감이 적은데다 8층의 높이여서 약간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기단부의 힘차고 화려한 조각수법에 비해 탑신부의 단순하고 소박한 느낌으로 조화감을 회복하며 대비감을 준다
수평으로 전개되다가 모서리에 이르러 위로 살짝 들린 추녀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한 지붕돌은 경쾌한 느낌 대신 중후함이 더하다


상륜부는 원형을 알 수 없을 만큼 손실되어 있다
현재 작은 보개석 위에 철제 찰주가 꽂혀 있으나 본래의 모습은 아닌 것으로 추측된다


부분적으로 고려시대 양식을 답습하면서 조선시대의 새로운 흐름으로 중창하였던 성종 3년(1472) 이후를 그 조성시기로 잡고 있다
대리석이라는 우아한 질감이 잘 나타난 높이 3m의 다층석탑은 보물 제 2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신륵사다층석탑(神勒寺多層石塔)


보물 제225호 
경기 여주군 복내면 천송리 282 신륵사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탑으로,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련한 후,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의 세부적인 조형방법은 전혀 달라서, 기단에서부터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돌 윗면에는 연꽃을 돌려 새겼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조각은 형식적이나, 특이하게도 물결무늬를 돋을새김해 두어 눈길을 끈다. 아래층 기단의 맨윗돌을 두껍게 얹어놓아 탑의 안정감을 높이고 있으며, 위층 기단의 모서리에 꽃 모양을 새긴 기둥을 두고 각 면마다 용무늬를 깊이 판 모습은 능숙한 석공의 솜씨를 드러낸다. 탑신부의 각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얇은 한 단이며,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치켜올려져 있다. 8층 몸돌 위에 지붕돌 하나와 몸돌 일부분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층수가 더 많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8층 탑신의 아래까지만 옛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각 부분 아래에 괴임을 둔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 석탑 양식을 일부분 남기고 있으나, 세부적인 조각양식 등에서 고려 양식을 벗어나려는 여러가지 표현이 돋보인다. 하얀 대리석이 주는 질감은 탑을 한층 우아하게 보이게끔 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원각사지십층석탑(국보 제2호)과 돌의 재질, 조각양식이 비슷하다. 신륵사는 조선 성종 3년(1472)에 대규모로 새 단장을 하였는데, 이 탑도 이 때에 함께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