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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터 석불대좌(高達寺址石佛臺座).경기 여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여주 고달사터 석불대좌(高達寺址石佛臺座).경기 여주

푸른새벽* 2007. 1. 10. 00:41

 

 

 

 

 

 

 

 

 

 

고달사터 석불대좌(高達寺址石佛臺座)


고달사터에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유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생긴 석불대좌이다
불상은 어디 가고 거대한 대좌(臺座)만 절터를 지키고 있다
어림짐작해보면 금당터가 아닌 듯한데

'사방 30리 절터'설을 적용해보면 금당터 위치가 가능한 이 석불대좌는 현재 논 가운데 놓여 있다
조성년대는 알 수 없다


좌대는 높이 1.57m에 사각이며, 상.중.하 지대석을 모두 갖추고 있다
3중으로 겹쳐 놓은 방형대좌에,
각 단의 구성은 각기 다른 돌로 다듬었으며 소담한 복련과 앙련을 조각해 장엄하였다
특히 불상이 안치 되어 있던 상대의 윗면은 퍽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는데
대좌의 크기나 장중함으로 보아
그 위에 앉아 있었을 불상 역시 규모가 조각기법이 매우 뛰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당시 선문에서는 철불을 유행처럼 조성했으니 이 대좌 위의 불상도 철불이었을지 궁금하다


지면에는 대좌 전체를 받치고 있는 지대석이 놓여 있고
그 위로 각형받침이 안정감 있게 한 단의 턱을 이루고 있다
각형받침의 각 면에 안상을 조각하였고,위로 복련을 둘러 새겼으며,중대를 받치는 3단 받침이 놓여 있다
사각의 중대는 각 면 좌우에 우주를 모각하였으며,4면에 모두 큼직한 안상을 하나씩 음각했다
상대에는 하대와 같은 기법의 앙련을 시원하게 둘러 새겼으며
상대받침은 3단의 역계단식으로 구성하고 가운데 것은 둥글게,위아래는 각형으로 두었다


전체적으로 방형인 대좌는 연꽃과 안상을 교체하면서 유연하고 명쾌한 조각솜씨로 조화시킨
고려 초기의 역작으로 꼽힌다
하대석 서쪽 면에 약간의 균열과 파손된 흔적이 있지만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보물 제 8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고달사지석불좌(高達寺址石佛座)


보물 제8호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20-5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었으나,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석불좌는 불상(佛像)은 없어진 채 대좌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받침돌은 위·중간·아래의 3단으로,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하였는데, 윗면은 불상이 놓여져 있던 곳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서로 대칭되게 돌려 새겼다. 이 대좌가 사각형으로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유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율동적이면서 팽창감이 느껴지는 연꽃잎의 묘사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꽃잎의 표현 수법은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 아래받침돌과 매우 비슷하며, 가운데 꽃잎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배열하는 방법은 고려시대의 양식상 공통된 특징이다.


조각솜씨가 훌륭한 사각형 대좌의 걸작으로, 절터에 있는 고달사지부도가 고려 전기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대좌도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