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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사나사 원증국사부도와 부도비(圓證國師浮屠.浮屠碑).경기 양평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양평 사나사 원증국사부도와 부도비(圓證國師浮屠.浮屠碑).경기 양평

푸른새벽* 2007. 1. 17. 11:08

 

 

 

 

 

 

 

 

 

원증국사부도(圓證國師浮屠).양평 사나사


원증국사 태고 보우(太古 普愚.1301~1382)의 석종부도는
기단부가 완전히 푸른 돌이끼로 덮여 있어 신비감마저 준다
석재가 화강암인 부도인데,
표면엔 아무 조각도 없이 평이하고 부도 정상에만 화염문을 조각한 낮은 보주가 얹혀 있다 
전체 높이는 2.75m,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72호이다

 

 

 

 

 

 

 

 

 

 

원증국사부도비(圓證國師浮屠碑)


원증국사부도비는 비좌 위에 평이한 돌로 양쪽 받침대를 세우고 비신을 얹은 다음 지붕돌을 놓았다
비문은 뒷날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사뭇 비판했던 정도전이 글을 짓고 의문(誼聞)이 글씨를 써 1386년(우왕 12)에 세웠다
비신 앞 뒷면에 빼곡이 담겨 있는 글씨는 비교적 선명해 꼼꼼히 짚어 보면 판독이 그다지 어렵지않다고 한다


얇디얇은 비의 몸돌이 마치 창호지문 뚫리듯이 숭숭 뚫려 있을 정도로 훼손이 심하다
한국전쟁 때 총에 맞아 심하게 상처를 입은 탓이다
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73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사나사원증국사석종비(舍那寺圓證國師石鐘碑)


시도유형문화재 제73호(양평군)
경기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 


사나사를 중창했던 고려 후기의 승려 원증국사 보우(1301∼1382)의 비이다. 보우의 호는 태고이며, 시호는 ‘원증’이고, 탑의 이름은 ‘보월승공’이다.


비는 고려말·조선초에 유행했더 양식으로, 받침돌 윗면에 비를 꽂아둘 네모난 홈을 파서 비몸을 세우고, 그 양 옆에 기둥을 대어 지붕돌을 얹었다. 비문은 파손되어 내용을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고려 우왕 12년(1386) 보우의 제자 달심이 세운 비로, 비문은 정도전이 짓고, 재림사의 주지인 의문이 글씨를 썼다. 비 뒷면에는 비를 세울 때 도움을 준 신도들의 명단을 적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