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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대웅보전(法住寺 大雄寶殿).충북 보은 본문

☆~ 풍경소리/충 북

법주사 대웅보전(法住寺 大雄寶殿).충북 보은

푸른새벽* 2007. 1. 24. 22:16

 

 

 

 

 

 

 

 

 

 

 

법주사 대웅보전(法住寺 大雄寶殿)


아래층이 정면 7칸 측면 4칸인 2층 건물로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계 팔작지붕집이다
높이가 19m에 이르는 매우 큰 불전이며 바깥에서 보면 2층이지만 안쪽은아래위층이 한 통으로 트여 있다
옛 건물 가운데 2층 건물은 조선시대의 궁전 건물을 제외하고 절집으로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
부여 무량사 극락저나,공주 마곡사 대웅전 등 한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안된다


기단과 계단석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뒤 절을 중창할 때 세워졌다
그후 고종 30년(1893)에 중수되었고 1976년에 다시 해체 중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3단으로 쌓은 기단 위에 댓돌을 한 단 돌리고 그 위에 건물을 앉혔다
기단 한 가운데에 넓적한 계단을 마련했는데 좌우에 둥글둥글한 소맷돌을 세웠고
가운데에 넓적한 돌 석장을 나란히 하여 계단을 좌우로 나누었다
이는 부처님을 연에 태워 모시거나 할 때 그 위로 연이 지나가도록 한 답도(踏道)로 이해된다
소맷돌 바깥쪽에는 굵직한 넝쿨이 뻗어 나가는 듯한 모습으로 연잎과 연꽃이 새겨졌고
소맷돌 위쪽에는 돌원숭이가 한 마리씩 앉았다
계단석 중에는 발딛는 자리에 연잎이 선각된 것이 있다


건물의 구조는 안쪽에 높은 기둥을 두 줄로 세우고 그 앞뒤로 바깥기둥을 세워 서로 연결하고 있다
또 안쪽 네 귀퉁이에 따로 높은 기둥을 세웠는데 이것이 위층에서는 네 귀의 기둥이 된다
이 건물은 이처럼 높은 기둥을 세우기 위해 어칸 둘레의 협칸이 바깥의 퇴칸보다 넓은 보통 건물과 달리
협칸보다 퇴칸이 더 넓은 특색을 지녔다


또 다른 특징은
아래위층의 공포가 다른 것이다
아래층은 내외2출목인데 위층은 내외3출목으로 공포가 한 단 더 높다
이는 아래층은 기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처마를 낮추어 허전함을 피하고
위층은 기둥이 아주 짧으므로 처마를 높여 답답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공포의 모양도 아래층 것은 직선으로 뻗었고 위층 것은 곡선으로 들려올라갔다
1976년 해체하여 중수하기 전에는 서까래만 있는 홑처마였다
그러나 해체하면서 원래 부연이 있는 겹처마였음이 밝혀져서 겹처마로 중수되었다
그런데 그전에는 단청무늬가 지금처럼 자잘하지 않고 건물의 규모에 걸맞게 큼직큼직했다고 한다


앞면에는  모두 살문이 달렸고 양옆면의 앞쪽 한 칸과 뒷벽 가운데 칸에 외짝문이 달렸다
동쪽 벽은 일반적인 불전과 마찬가지로 문을 제외한 전면이 막혀 있지만
서쪽 벽은 문 이외의 모든 면에 살창이 달린 특이한 모습이다
이 창들은 가운데 작은 기둥을 두고 양쪽의 두 짝이 맞잡이로 붙은 영쌍창으로
주로 조선 중기 이전의 건물에서 볼 수 있다
위층은 기둥 사이를 판자로 막고 비천상을 그려놓았는데 옛날 법주사 그림을 보면
위층에 살창이 달려 자연광이 비쳐들도록 되어 있었다


이 건물은 아래층 높이가 위층에 비해 매우 높아서 탑과 비슷한 비례를 보인다
또한 앞쪽 가운데 칸을 뺀 모든 칸이 좁고 높으므로 건물 전체에서 훤칠하게 솟은 느낌이 강조되고 있다


이 불전은 대웅보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안에 모셔진 불상으로 볼때는 대적광전이라 해야 옳다
대웅전은 대웅세존(석가모니의 다른 이름)과 좌우협시보살을 모신 집인데
여기에는 비로자나불이 주존이기 때문이다
바이로차나(비로자나)에는 빛이 두루 비친다는 뜻이 있으므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전에는 대적광전,대광명전 등 주로 빛 광(光)자가 들어가게 된다
옛 기록에는 이 건물이 대웅대광명전이라고 되어 있으나
흥선대원군 시절 당백전을 주조하기 위해 미륵장륙존상을 헐어 갈 무렵 대웅보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웅보전은 보물 제 915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법주사대웅전(法住寺大雄殿)


보물 제915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법주사 


속리산 기슭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전은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내부에 모신 삼존불은 벽암이 다시 지을 때 조성한 것으로 가운데에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 왼쪽에 보신(報身)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있다.


이 건물은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함께 우리나라 3대불전(佛典) 중 하나이다. 
*문화재청자료*

 

 

 *대웅전 기단 한 가운데에 넓적한 계단

좌우에 둥글둥글한 소맷돌을 세웠고
가운데에 넓적한 돌 석장을 나란히 하여 계단을 좌우로 나누었다
이는 부처님을 연에 태워 모시거나 할 때 그 위로 연이 지나가도록 한 답도(踏道)로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