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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쌍사자석등(法住寺 雙獅子石燈).충북 보은 본문

☆~ 풍경소리/충 북

법주사 쌍사자석등(法住寺 雙獅子石燈).충북 보은

푸른새벽* 2007. 1. 26. 23:28

 

 

 

 

 

 

 

법주사 쌍사자석등(法住寺 雙獅子石燈)


신라 석등의 전형 양식인 팔각석등에서 팔각기둥이 드어갈 부분을 사자 두 마리로 바꾸어놓은 석등이다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석조물 가운데는 사자를 조각해 넣은 것이 많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시대의 쌍사자석등으로는 이것 이외에 경남 합천의 영암사터 쌍사자석등,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된 중흥사 쌍사자석등이 있다
그중 법주사 쌍사자석등은 높이 3.3m로 규모도 가장 크며 조각수법도 가장 뛰어난 유물로 꼽힌다


두툼한 팔각지대석 위에 올려진 연화하대석과 쌍사자 기둥,연화상대석은 모두 한 돌에 조각되었고
화사석과 지붕돌은 각각 만들어져 조합되었다
지대석은 옆면에 각 면마다 테두리가 있고 윗면에는 두 단의 굄이 있어 하대석을 받는다
하대석 굄은 팔각으로 돌려져 있지만 하대석은 둥글며 조금 작아보인다
하대석 옆면에는 연꽃잎 여덟 장을 엎어 새겼고 연꽃잎 안에는 다시 꽃 모양이 장식되었다
윗면에는 넓은 팔각 굄이 조각되어 쌍사자를 받쳤다


팔각기둥을 대신한 사자 두 마리는
가슴을 대고 머리를 젖힌 채 마주서서 앞발과 주둥이로 상대석을 받들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입을 벌렸고 한 마리는 다물었다
갈기털과 몸의 근육이 표현되었고 하대석을 딛고 선 뒷발이 굵고 탄탄하다
둥그런 상대석 아래 둘레에는
두 단의 팔각받침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연꽃잎 열여섯 장이 두겹으로 피어올랐다
아래 연꽃잎 속에는 반원이 두 줄 새겨졌으며 위 연꽃잎 안에는 구슬무늬가 세 개씩 장식되어 있다
윗면에는 둥그런 굄이 한 단 있다


화사석 또한 팔각인데
화창이 앞뒤와 양옆 네 군데에 맞뚫렸고 화창둘레의 창틀에는 군데군데 못 구멍이 나 있다
일반적인 석등의 화사석과 비교할 때 이 화사석은 매우 높기 때문에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화사석뿐만 아니라 지붕돌도 전체 규모에 비해 큼지막하다
지붕돌의 처마는 수평이지만 낙수면이 활처럼 휘어 여덟 모서리가 들려올라갔다
지붕돌 아랫면에는 화사석 위쪽을 둘러 받침 두 단이 있고
처마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아랫면으로 번져들지 않도록 해주는 작은 홈이 돌려졌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연꽃 문양이 희미하게 남아 있고 그 위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보주가 얹혀져 있다
이 쌍사자석등은 국보 제 5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법주사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긴다. 사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내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 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같은 절 안에 있는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신라 석등을 대표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