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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원통보전(法住寺 圓通寶殿).충북 보은 본문

☆~ 풍경소리/충 북

법주사 원통보전(法住寺 圓通寶殿).충북 보은

푸른새벽* 2007. 1. 25. 23:31

 

 

 

 

 

 

법주사 원통보전(法住寺 圓通寶殿)


정면 3칸 측면 3칸의 몸체에 사모지붕을 인 흔치 않은 모습의 별당이며
보물 제 916호이다
정면 3칸이 측면 3칸 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몸체가 거의 정사각형에 가깝다


기단은 앞과 오른쪽 3단,뒤와 왼쪽은 2단인데 마당이 높아지면서 아래가 묻혀서 앞쪽에 2단,
양옆과 뒤쪽에 1단이 드러나 있다
앞쪽 가운데에 계단이 두어졌다
이 기단은 통일신라 말 원통보전이 초창될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위에 선 건물은 임진왜란 후에 복원되었고 고종 때 중수되었으며 1974년에 본격적으로 해체 복원되었다


기둥 위에만 공포를 놓은 주심포계 집이면서도
공포를 짠 방식은 내외3출목으로 다포집의 통상적인 양식을 보이며 평방까지 갖추고 있다
기둥 위에 수평으로 가로놓이는 평방은 기둥 사이의 공포를 받기 위한 것으로
다포집에만 필요한 부제이다
이 집에서는 기둥 사이에 공포를 놓는 대신 커다란 화반을 끼웠다


지붕은 마루가 한 꼭지에 모인 사모지붕이다
처마가 삿갓을 쓴 듯 깊숙하지만 양끝이 곱게 휘어올라가 무거운 느낌은 없다
추녀 아래쪽에는 네 귀퉁이에 모두 추녀가 처지지 않도록 활주를 받쳤던 흔적이 있고
앞쪽 기단 좌우 모서리에 활주 초석이 남아 있다
지붕 꼭대기에는 둥근 받침 위에 석탑이나 석등의 상륜부와 비슷한 모양의 돌로 만든 절병통이 놓여 있다
건물의 동쪽 벽은 모두 막혀 있는데 서쪽 벽에는 출입문과 한 쌍의 창이 달렸고 뒷벽 가운데도 창이 있다


건물 안 중심에 높은 기둥 네 개를 세워 넓은 칸을 만들고

그 둘레에 낮은 기둥 열 두개를 세워 연결했으므로
건물의 중심칸이 양옆칸보다 두 배 이상 넓다
높은 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고,사모지붕을 위한 구조를 짜기 위해
대들보가 열 십(十)자로 교차하는 부분에 짧은 기둥을 세웠다
이 기둥의 위쪽은 절병통 바로 아래까지 이른다


뒤쪽의 높은 기둥 사이에 후불벽을 치고 탱화를 걸었으며
그 아래 불단에는 가운데 목조관세음보살좌상을 모시고 좌우로 해상용왕상과 남순동자상을 모셨다
원통보전(圓通寶殿)이라는 이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집을 뜻한다
관세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주는 분이기 때문이다
천장은 우물반자인데 관세음보살의 머리 위에 닫집을 따로 두지 않고
우물 네 개를 터서 반자를 크게 하여 특별한 자리임을 나타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법주사원통보전(法住寺圓通寶殿)


보물 제916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법주사 


속리산 기슭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원통보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정사각형 1층 건물로,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가 진 사모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에는 앉은키 2.8m의 금색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관세음보살상은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에는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고 있다.


단순하지만 특이한 건축 양식을 갖추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