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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사천왕석등(法住寺 四天王石燈).충북 보은 본문

☆~ 풍경소리/충 북

법주사 사천왕석등(法住寺 四天王石燈).충북 보은

푸른새벽* 2007. 1. 28. 23:13

 

 

 

 

 

 

 

법주사 사천왕석등(法住寺 四天王石燈)


팔각 화사석 둘레에 사천왕상을 조각한 석등이다
하대석,기둥돌,상대석,화사석 그리고 지붕돌이 모두 팔각을 이룬,
통일신라시대에 가장 널리 조성된 팔각석등양식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높이 3.9m의 장중한 규모이며 각 부분과 전체의 균형이 잘 잡혔는데 화사석에 조금 금이 가고
꼭대기의 보주가 없어졌지만 나머지 보존상태는 좋다
보물 제 15호이다


조성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법주사 초창기인 통일신라 혜공왕*765~780)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대웅보전 앞으로 옮겨져 있으나 예전에는 용화보전 앞에 있었고
사천왕석등 앞에는 향로를 머리에 인 희견보살상이,뒤에는 석련지가 있었다
이것은 최상의 공양인 향과 등,차를 용화보전의 미륵불 앞에 드린다는 뜻을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넓적한 돌 넉장을 맞춰서 네모진 지대석을 만들고 그 위에 팔각기대석을 놓았다
기대석 옆면으로 위쪽에 넓은 띠가 둘리고 각 면마다 안상이 얕게 새겨졌다
위에 올려진 연화하대석에는 8장의 연꽃잎이 엎어 새겨졌고 꽃잎 안에 보상화무늬가 장식되었으며
아래쪽에 두 단,위쪽에 석단의 받침이 각각 둘레를 줄여가면서 두어졌다
팔각기둥돌 위에 놓인 상대석에도 연화하대석과 같은 모양의 연꽃잎이 새겨졌고 아래쪽에 석단,
위쪽에 두 단의 받침이 이번에는 조금씩 둘레를 넓혀가며 두어졌다


화사석은 8면 가운데 앞뒤 양옆의 네 면에 화창이 뚫렸고 나머지 네 면에 사천왕상이 새겨졌다
각기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채 악귀를 밟고 선 사천왕은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통일신라 전성기의 활기를 느끼게 한다
화창을 두른 문틀에는 문을 다는 데 쓰였던 못 구멍이 뚫려있다
지붕돌 아랫면에 받침 두 단과 낙수홈이 파였으며 윗면 꼭대기에 보주받침 두 단이 있으나
원래의 보주는 잃어버렸다
지금 있는 보주는 새로 해 얹은 것이다
지붕돌 윗면이 완만하며 처마는 얇은 편인데
거의 수평을 이루다가 모서리에 이르러 조금씩 들려서 야무지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법주사사천왕석등(法住寺四天王石燈)


보물 제15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법주사 


법주사 팔상전의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석등이다.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네모난 받침돌 위에 아래받침돌은 면마다 안상을 얕게 새기고, 그 윗면은 가운데받침돌을 사이에 두고 윗받침돌과 대칭되게 연꽃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대체로 각 부분의 양식이 정제되어 있고 조각수법이 우수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시기는 신라 불교미술이 꽃피워진 8세기 중기 이후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