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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정전(明政殿).서울 창경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명정전(明政殿).서울 창경궁

푸른새벽* 2007. 1. 29. 23:21

 

 

 명정전(明政殿)


창경궁의 정전(正殿)인 명정전(明政殿)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지붕의 다포계 건물이다.창경궁 창건 당시인 성종 15년(1484)에 건립되었으며,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이후 인조와 순조 때에 큰 화재를 겪으면서도 무사히 보존되었고,1980년대 들어 주변 행각 및 빈양문(賓陽문)일곽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명정전은 현존하는 조선 왕조의 궁궐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홍화문.명정문 및 그 좌우 행각.창덕궁 돈화문 등과 함께 17세기 전기의 목조 건축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 등의 궁궐 정전이 중층인 데 비해 명정전은 단층이며 그 규모 또한 상대적으로 작다.이는 창경궁이 대비(大妃) 들이 거주할 이궁(離宮)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건물의 좌향이 동쪽(酉坐卯向.유좌묘향)인 이유도 마찬가지 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 성종은 "임금은 반드시 남쪽을 면하고 다스리는 법인데,창경궁은 동향인지라 임금이 정치하는 곳이 아니다"라고 하였다.광해군 때의 중건시에는 명정전을 남향으로 짓자는 논란이 있었으나 예전대로 동향 건물로 앉혔다.「東闕圖(동궐도)에 의하면,명정전의 북행각에는 영청문(永淸門)이,남행각에는 광정문(光政門)이 평대문으로 나 있었다


명정전 앞 조정(朝廷)은 명정문 좌우 행각과 남북 행각,문정전 동행각 등으로 사방을 둘러막아 형성하였다.마당에는 장방형으로 다듬은 판석을 깔고 한복판에 어로(御路)를 만들었다.어로의 좌우에는 각각 12개씩의 품계석을 배열하였다.명정문 어칸(御間)에서 이어지는 어로의 끝에는 상하2층(정면 전체와 북쪽 측면 일부만 2층이다)월대를 각각 장대석 세벌대로 쌓아 2.5m 정도의 높이로 구성하고 그 정면과 양 옆면에 각각 다른 모양의 계단을 설치하였다.월대는 난간을 두르지 않은 아주 단순 간결한 구조이며,그 앞면 가운데로 명정전 어칸에 맞추어서 세 길로 구획된 이중 계단을 형성하고 중앙 칸에는 넓적한 판석에 봉황(鳳凰)을 새긴 답도(踏道)를 놓았다.아래 위 답도 양옆에는 석수상(石獸像)을 배치하였다.정면 계단의 너비는 5m 정도 이다.상월대 위 3m 남짓 안쪽으로 다시 장대석 한벌대로 기단을 놓고 원형 주좌(柱座)를 도드라지게 만든  주춧돌을 배열하여 20개의 두리기둥을 세웠다.정면 5칸 측면 3칸에 건물 뒤로 툇간(退間)1칸을 내달아 평면을 구성하였다
16개의 바깥 두리기둥은 높이 14척의 평주를 배열하였고 내부에는 앞에서 두번째 열에만 4개의 고주를 세워 대들보를 받침으로써 앞 툇간을 이루었다.건물 내부 앞에서 세 번째 열에 해당하는 부분의 기둥을 모두 생략하여 어좌(御座)주위를 넓게 확보하였으며 건물 바깥 뒤쪽 툇간에는 처마 밑에 따로 지붕을 얹은 복도를 부설하였는데 남쪽 건물 밖으로 복도각을 잇달아 문정전 뒷면 가운데 칸까지 연결시켰다


또한 명정전 뒷면 가운데 칸에서 서쪽으로 내전을 드나드는 빈양문까지도 복도각을 형성하였다.이 복도각을 통해 숭문당으로도 갈 수 있다.이들 복도각은 네모 뿔대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지붕만 올렸으며 벽체나 창호는 없이 개방되었는데 층단을 이룬 지붕 선이 조화를 이룬다.이러한 건물 뒷면의 공간 구성은 다른 궁궐의 정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가구의 짜임을 살펴보면,기둥 윗몸에 평방과 창방 등 수평 부재를 차례로 결구하고 그 위에 주두(柱頭)를 놓은 다음
외삼출목 내사출목인 공포를 짜 올려 지붕을 받쳤다.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며 지붕위에는 마루를 높게 양성하여 용마루에는 취두,합각 내림마루에는 용두,추녀마루에는 잡상을 각각 배열하였다.건물 내부 바닥은 전돌을 깔았으며,보좌는 세 면에 각각 네 단의 나무 계단을 세우고 난간을 둘러 장식한 다음 가운데 뒤쪽에 어탑(御榻)을 놓고 그 뒤는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으로 장식하였다.보좌 위에는 화려하게 짠 포를 올려 만든 보개(寶蓋)를 달고 보개 한복판에 두 마리 봉황과 구름을 새겨 왕의 자리임을 상징하였다.또 천장 한복판에도 감입(嵌入)천장을 마련하여 두 마리 봉황과 구름을 조각해 달았으며
그 둘레는 꽃무늬를 그린 정방형의 소란반자를 둘렀다.그 바깥쪽에 다시 소란반자를 한 단 낮게 둘러서 층단(層段)천장을 형성하였다.다시 그 바깥쪽은 건실하게 짠 가구를 그대로 드러내어 천장의 일부를 구성하였다


명정전의 창호를 살펴보면,정면 5칸 중 어칸을 포함한 가운데 3칸에는 머름 없이 2단 궁창 솟을빗꽃살 창호를 달았는데어칸은 4분합이고 그 좌우 두 칸은 세 짝 창호이다.건물 정면 좌우 양끝 칸과 남북 측면의 좌우 양끝 칸에는 전돌 11~12층으로 하벽을 쌓고 그 위에 두 짝 솟을빗꽃살 창호를 달았다.건물의 남북 양 측면에는 가운데 칸에 머름 없이 디딤돌을 놓아 내부로 드나들게 하였으며 세짝 2단 궁창 솟을빗꽃살 창호를 달았다.그 양쪽 좌우 칸에는 전돌로 하벽을 쌓고 그 위에 두 짝 솟을빗꽃살 창호를 달았다.건물 뒷면 가운데 세 칸에도 디딤돌을 놓아 내부로 드나들게 하였는데 어칸에는 2단 궁창 솟을빗꽃살 창호를 4분합으로 달았으며,그 좌우 칸에는 세 짝씩 달았다.또한,건물 뒷면을 제외한 모든 창호의 위에는 빗살 교창을 달았다


역사적으로 인종이 이곳 명정전에서 즉위하였으며 반정을 일으킨 인조는 정릉동 행궁(경운궁)별당(즉조당)에서 즉위한 후 이곳 명정전으로 와 하례를 받았다.또한,임오군란(壬午軍亂)당시 명성왕후 민씨가 장호원으로 피신하였던 바 대원군이 서둘러 왕후의 승하를 선포하고 이곳 명정전을 망곡처(望哭處)로 하였다고도 하는데 확실치 않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창경궁명정전(昌慶宮明政殿)


국보 제226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창경궁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1층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2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궁궐의 정전으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 위의 장식적인 짜임은 그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그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왕이 앉는 의자 뒤로 해와 달, 5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건물 계단 앞에는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남측의 문정전과 주변 행각은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로 대부분 복원하였고, 일제 때 격하되었던 창경원의 명칭을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자료*

 

 

 

 *명정전의 이중 월대를 오르는 계단

상하 월대 모두에 소맷돌과 돌짐승으로 세 길을 구획하고 그 가운데 봉황을 선명하게 새긴 답도를 놓았다.창덕궁 인정전에는 서수,즉 돌짐승 여덟 마리를 배치했으나,명정전 월대에는 네 마리만 배치했다

 

 

 

 

 

 *명정전 월대 돌계단의 돌짐승

역시 뿔 하나를 달고 있다

 

 

 

 

 *명정전 월대 돌계단의 답도(踏道)

봉황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명정전 정면 어칸 좌우에는 세 짝씩 창호를 달았다

 

 

 

 

 *명정전 편액과 어칸의 구성

사분합 창호를 달아 출입토록 했으며,그 위에 빗살 교창을 달았다.창방 위에 다시 평방을 결구하였으며, 공포는 외삼출목 내사출목의 다포계양식으로 짜 올렸다

 

 

 

 

 *명정전의 솟을빗꽃살 창호

건물 정면 좌우 양끝 칸과 남북 측면의 양끝 칸에는 전돌로 하벽을 쌓고 두 짝씩의 창호를 달았다

 

 

 

 

 *명정전 내부의 고주와 가구

천장은 우물 천장으로 마감하였으며,바닥에는 방전을 깔았다

 

 

 

 

 *명정전의 어좌와 보개와 보개 천장의 구성

보개에도 봉황을 새겼는데...사진을 찍지 못했다

 

 

 

 

 *명정전 어좌 위 보개 천장의 황금 봉황

봉황과 여의주와 구름 등을 따로따로 조각하여 천장 가구에 매달아 고정하였다

(사진찍기가 아주 불편하였던 탓에 많이 흔들렸다)

 

 

 

 

 *명정전의 어좌

용상 뒤로 일월오악병을 두르고 후벽을 쳤으며 ,보개를 달았다.다른 궁궐의 정전 어좌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간결한 구성이다

 

 

 

 

 *명정전 뒷면의 처마

 

 

 

 

 *명정전 뒷면 툇간에는 처마 밑에 따로 지붕을 얹은 복도각을 냈다.멀리 보이는 정자살 창호는 문정전 뒷면 가운데 칸의 창호이다.이러한 공간 구성은 다른 궁궐 정전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이다

 

 

 

 

 

*빈양문(賓陽門)

내전으로 통하는 문이다.명정전 뒷면 가운데 칸에서 부터 이곳까지도 복도각을 형성하였다.멀리 보이는 솟을빗꽃살 창호부분이 명정전 뒷면 가운데 칸이다.명정전에서 복도각을 따라 이 문으로 오는 왼쪽에 숭문당이 있고 이 문을 나서서 오른쪽 방향에 함인정이 있다

 

 

 

 

 *명정전의 드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