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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전(文政殿).서울 창경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문정전(文政殿).서울 창경궁

푸른새벽* 2007. 1. 30. 23:33

 

문정전(文政殿)


명정전 남쪽 방향으로 바로 옆에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文政殿)이 남향으로 위치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 규모로 다포계 팔작 지붕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중건되었다
이후 순종 연간 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그 이후 일제에 의해 철거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 창경궁 중창 공사시 발굴 조사를 거쳐 1986년에 복원되었다
이때 솟을대문인 문정문(文政門)과 동행각도 함께 복원되었으며 건물 서쪽 경사지에는 남북방향으로 화계(花階)를 조성하였다


고증에 따라 복원된 문정전은 장대석 세벌대로 쌓은 기단 위에 다시 한벌대를 놓아 2중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방형 초석을 놓아 방형 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다포 양식으로 외이출목 내삼출목이다
건물 정면 초석과 초석 사이에는 칸 너비만큼 2급의 돌계단을 놓았으며
아래 기단 앞에는 돌계단 셋을 설치했는데 가운데 계단은 소맷돌을 설치하여 어계(御階)로 형성하였다
처마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며 지붕 마루는 양성을 하여 취두.용두.잡상을 배열하였다
창호는 네 면 모두 정자살 창호를 달았으며 교창은 설치하지 않았다
건물 내부에는 어좌(御座)와 일월오악병(日月五岳屛)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우물천장으로 마감한 천장에는 보개(寶蓋)를 달았다


문정전은 창경궁 외전을 구성하는 주요 건물들 즉,명정전.숭문당.명정문.홍화문 등이 모두 동향인 데 반해 남향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光海君日記(광해군일기)』 등의 기록을 살펴보면
중건 당시 광해군은 문정전을 명정전과 같이 동향으로 앉히고 기둥도 원주(圓柱)로 하고자 했으나
사간원(司諫院) 등에서 창건 당시대로 남향,방주(方柱)로 건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복원되어 있는 문정전 일곽은 「東闕圖(동궐도)」에 묘사된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현재는 담장이 남쪽에만 둘러져 있으나,「동궐도」에는 서쪽 화계 위로는 물론 숭문당 및 명정전과도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숭문당과 명정전 사이에는 정면 2칸 규모의 작은 건물이 묘사되어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동행각에 나 있는 문정문 바깥에서부터 이어지는 복도각이
마당 안 서쪽으로 화계 앞까지 길게 연결되어 있으며,
이 복도각 가운데쯤에서 남북 방향으로 문정전 건물 어칸까지도 복도각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문정문에서 이어진 복도각은 창호나 벽체없이 개방되어 있으며 남북으로 놓인 복도각에는 창호가 표현되어 있다
또한,화계 위 서쪽 담장과 남쪽 담장에는 일각대문이 각각 나 있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문정문은 동향하였다

삼문이지만 가운데 칸만 솟을 대문이고 양옆 칸은 평대문이다

 

*문정전의 어좌

경복궁의 사정전이나 창덕궁의 선정전에 비해 그 치장이 간결하다

어탑,즉 용상의 뒤로 일월오악병을 치고 그 위에 보개를 달았다

 

 *「동궐도」에는 문정전 마당에 T 자 모양으로 복도각이 표현되어 있다

즉,문정전에서 서쪽 화계 앞까지 복도각이 설치되었고,

그 복도각의 가운데 부분에서 꺾여 문정전 어칸까지도 복도각이 설치되었다

사진은 문정전 마당 남서쪽에 남아 있는 복도각의 기단석과 초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