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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숭문당(崇文堂).서울 창경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숭문당(崇文堂).서울 창경궁

푸른새벽* 2007. 2. 1. 00:01

 

숭문당(崇文堂)


명정전 뒤쪽 빈양문으로 가는 복도각 남쪽에 숭문당(崇文堂)이 자리잡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지붕 건물이며 동향으로 앉혔다
경사진 터를 이용하여 건물 뒤쪽은 네모 뿔대 초석을 낮게 놓았고,앞쪽은 사다리꼴의 주초석을 높이 세워 누(樓)처럼 형성하였다
기둥은 네모기둥이다
외전 건물이면서도 격을 낮추어 검소하고 간결한 구조인데 처마는 서까래만 걸고 부연을 달지 않은 홑처마이며 공포는 초익공 양식이다
지붕 마루도 양성을 하지않았으며 용두만 얹었다
건물 앞쪽 긴 주초석으로 받친 툇간은 4칸 모두 개방하여 누마루 형태로 구성하였으며
그 양쪽으로 목조 계단을 설치해 명정전 쪽만 아니라 문정전 쪽에서도 바로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건물 뒷면에는 툇마루를 놓고 낮은 난간을 둘렀다


평면은 남쪽으로부터 툇간 마루.온돌방.대청.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
건물 정면에는 흙벽을 치고 창호를 달았는데,남쪽으로부터 첫째 칸은 머름 없이 궁창 띠살 창호 세 짝을,
두번째 칸 온돌방에는 머름 위에 띠살 창호 두 짝을,세 번째 칸 대청에는 궁창 띠살 창호 네 짝과 빗살 교창을 달았다
그 다음 온돌방에도 머름을 놓고 띠살 창호 두 짝을 달았다
이외 건물 측면과 뒷면에도 띠살 창호와 정자살 창호 및 빗살 교창을 두 짝,세 짝 혹은 네짝씩 달았다
건물 내부의 대청과 양쪽 온돌방 사이에는 현재 문지방만 남아 있다
「東闕圖(동궐도)」에 의하면,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남쪽 면과 서쪽 면에도 퇴를 놓고 난간을 둘렀으며
명정전 및 문정전과도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또한,남쪽 담장에도 일각대문인 보화문(普和門)이 묘사되어 있다
숭문당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행각에는 빈양문이 나 있다
1986년에 복원된 빈양문은 외전과 내전을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명정전 뒷면 어칸에서부터 설치된 복도각을 따라 이 문을 나서면 북쪽으로 함인정.경춘전.환경전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숭문당 건물은 창경궁 창건 당시에는 없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서거정이 지었다는 창건 당시의 전각 이름들에서 빠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립 연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인조 11년(1633)의 『창경궁수리소의궤』에 '崇文堂十二間仍修理(숭문당십이간잉수리)'라고 기록하고 있는바
숭문당은 광해군 시절의 창경궁 중건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英祖實錄(영조실록)』에는 영조가 이곳에서 친히 태학 재임(太學齋任)을 접견하고 주연을 베풀었다고 한다
그리고 ,편액의 崇文은 '유교를 숭상한다는 뜻(崇儒之意)'이라고 하였다
'崇文堂'편액과 '日監在玆(일감재자)'라는 게판(揭板)은 영조의 어필(御筆)이다
숭문당은 순조 30년의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그해(1830)즉시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유교를 숭상한다는 의미의 숭문당 편액

영조의 어필(御筆)이다

 

 *숭문당의 귀공포와 추녀

공포는 초익공으로 짰고,추녀와 서까래에 사래와 부연을 덧대지 않은 홑처마로 마감하였다

 

 *숭문당 누마루의 평난간

난간궁창에는 안상 풍혈을 팠고,하엽동자로 둥근 돌난대를 받쳤다

 

 *숭문당 남쪽 측면의 정자살 창호와 빗살 교창

 

 *명정전 뒷쪽에서 바라본 숭문당

외전 전각이면서도 전체적으로 격을 낮추어 검소한 분위기를 풍긴다

긴 주초석으로 툇간을 구성하였으며

기단 앞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이 자그마한 월대로 뜰을 형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