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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함인정(涵仁亭).서울 창경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함인정(涵仁亭).서울 창경궁

푸른새벽* 2007. 2. 2. 00:02

 

함인정(涵仁亭)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정자이다
장대석 세벌대로 높직하게 기단을 쌓고 네모난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운 이익공 양식의 팔작 지붕 건물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지붕마루는 양성을 하지 않았다
건물 사방을 벽체나 창호 등이 없이 시원하게 개방하였다
기둥은 바깥으로 12개의 평주를 세우고,내부에는 4개의 고주를 세워 바닥과 천장 공간을 달리하여 정면 1칸 측면 1칸을 형성하였다
계단은 건물 앞뒤 면에만 하나씩 놓았으며 기단에서 건물 안으로 드는 디딤돌은 앞 뒤면에는 각 칸마다
양 측면에는 가운데 칸에만 놓았다
바닥은 우물마루로 깔았는데,고주로 형성한 안쪽 공간의 바닥을 한 단 높였다
고주로 받친 안쪽 공간의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그 바깥 공간은 연등천장이다
고주 안쪽 천장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4계(季)현판이 걸려 있다


『宮闕志(궁궐지)』에 의하면,지금 함인정이 있는 자리는 창건 당시에 건립되었던 인양전(仁陽殿)이 있던 터였다고 한다
인양전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때 재건되었다가 이괄의 난 당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광해군 때 건립되었다가 철훼되었던 흠명전(欽明殿)이 함인정 근처에 있었다고 적고 있다


함인정은 인조 11년(1633)에 건립되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궁궐지』에는 인경궁(仁慶宮)의 함인당을 철거하여 옮겨지었으며,그 이름을 함인정이라고 고쳤다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인조 11년의 창경궁 중건 공사내역을 상세하게 정리한 『창경궁수리소의궤』에서는
함인정 9칸 중 5칸은 인경궁 경수전(慶壽殿)의 후행각 5칸을 옮겨지었고 나머지 4칸은 새로 지은 것으로 적고 있다
반면,인경궁 함인당은 철거하여 통명전의 서책방(西冊房)과 동행각으로 옮겨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함인정은 순조 30년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순조 33년(1833)에 재건되었다
「東闕圖(동궐도)」에 의하면, 함인정 뒤로 담장을 치고 서쪽에는 협문이 딸린 홍인문(弘仁門)을 냈으며
동쪽에도 이름 없는 일각대문을 세웠으나  현재는 물론 담장도 문도 사라지고 없다


또한「東闕圖(동궐도)」에 묘사된 함인정은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남쪽 정면을 제외한 세 면에 창호를 달았다


함인정 서남쪽 방향 화계 뒤 높은 담장 너머로는 낙선재 일곽의 취운정(翠雲亭)이 보인다
취운정은 원래 창경궁 영역에 속했으며 숙종 12년(1686)에 건립되었다
「東闕圖(동궐도)」에는 함인정 앞 뜰,
즉 숭문당 뒷면 쪽에서 3층으로 단을 이룬 계단을 오르면 취운정으로 드나드는 일각대문이 표현되어 있다


영조는 이 함인정에서 문과(文科)와 무과(武科)에 급제한 사람들을 접견했다고 한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함인정의 정면 모습

경쾌한 처마선이 물찬 제비같다

멀리 환경전 편액이 보인다

 

 

 

 

 

 *함인정 4계절 현판
봄에는 연못에 가득한 물을,(春水滿四澤)
여름에는 산봉우리에 걸린 기이한 구름을,(夏雲多奇峯)
가을에는 밝게 빛나는 달을,(秋月揚明輝)
겨울에는 소나무가 외로이 서 있는 고갯마루를(冬嶺秀孤松)
그 소재로 삼았다

 *함인정 천장에 건 「涵仁亭追記」

 

 *함인정의 내부 천장

고주로 받친 한 칸의 공간을 우물 천장으로 마감하여 꽃무늬 단청을 입히고 각종 현판을 걸었다

 

 *함인정 남서쪽에서 낙선재 영역과 경계를 이루는 담장

新舊의 조화인가...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