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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환경전(歡慶殿).서울 창경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환경전(歡慶殿).서울 창경궁

푸른새벽* 2007. 2. 2. 23:34

 

환경전(歡慶殿)


함인정 뒤 북쪽 방향에는 환경전이 위치해 있다
통명전.경춘전.양화당 등과 함께 창경궁의 내전을 구성하는 건물이다
정면 7칸 측면 4칸의 규모이며,창경궁 창건 당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그리고
순조 30년의 화재로 불에 타 광해군 8년,인조 11년,순조 33년에 각각 중건되었다
인조 11년의 중건과 관련하여,『昌慶宮修理所儀軌(창경궁수리소의궤)』에는
인경궁의 문명전(文明殿)을 헐어다 옮겨지은 것으로 기록했다


건물 기단은 장대석 한벌대로 낮게 깔고 그 위에 다시 장대석 세벌대를 쌓았는데
쌓은 면을 초석의 바깥 면과 맞추어 가지런히 하였으며
제일 위 세 번째 장대석은 초석과 초석 사이에 초석의 절반 높이로 맞물리게 하였다
초석은 방형이며 그 위에 역시 네모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이익공 양식이며,처마는 부연(附椽)을 달아 겹처마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팔작 지붕인데 각 지붕 마루는 양성을 하였으며 취두와 용두는 얹었으나 잡상은 배열하지 않았다
남향으로 앉힌 건물 앞면 가운데 툇간 한 칸을 개방하였으며 그 앞에 높은 계단 둘을 붙여 놓아 바로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원래의 평면은 대청과 온돌방 및 툇간으로 구성되었으나,현재는 바닥 전체에 마루가 깔려 있으며
대청과 방을 구분하던 벽체나 창호 등은 남아 있지 않다
건물 내부 툇간 부분의 천장은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낸 연등천장이며 그 안쪽은 우물천장이다
창호는 정자살 및 띠살 창호를 주로 달았다
건물의 규모나 평면 및 건축 양식이 경춘전과 유사하다


「東闕圖(동궐도)」에 의하면,함인정과 환경전 사이에는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했던 공묵각(恭默閣)이
서행각을 거느리고 담장 등과 함께 표현되어 있고
그 뒤 북쪽 방향에 서행각 및 북행각,북쪽 담장,동쪽 담장을 거느린 환경전이 자리잡았다
「동궐도」에 묘사된 환경전은 현재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
우선 건물 앞면과 측면의 툇간 부분이 높직한 초석을 놓은 누(樓) 형태를 하고 있으며 그 앞면 3칸은 누마루 형태로 개방되었다
또한 현재와 달리 지붕의 추녀마루에는 잡상이 그려져 있다
경춘전과 환경전을 구획하는 서행각에는 평대문인 집의문(集義門)이 표현되어 있다


환경전의 정확한 용도는 모호하지만,임금 또는 세자 등의 생활 공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궁궐지』에는 중종이 이 건물에서 승하하였다고 적었으며,
순조 30년에는 당시 대리청정을 하던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타계하자
발인 때 까지의 빈궁(殯宮)으로 활용하였다
이때 환경전 일곽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경춘전 등의 내전 건물과 숭문당.빈양문.함인정 등으로 크게 번졌다
또한,인조의 맏아들이자 효종의 형인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이곳에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전해온다
영조 시절에는 임금이 이곳에서 잠시 정무를 살피기도 했다
환경전은 특히 왕후들의 빈전(殯殿)으로 사용된 적이 많았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환경전

창경궁 내전을 구성하는 전각의 하나로 중종이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또한,순조 30년에는 효명세자의 빈궁으로 사용하다가 일어난 화재가 큰불로 번져

내전 전각들이 거의 소실되기도 하였다

 

 *환경전 편액

 

 *환경전의 창호

머름 위에 정자살과 띠살 창호 네 짝씩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