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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현기탑비(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碑).국립중앙박물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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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현기탑비(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碑).국립중앙박물관

푸른새벽* 2007. 2. 4. 21:30

 

 

 

 

 

 

 

  

 

보리사대경대사현기탑비(菩提寺大鏡大師玄機塔碑)

 

고려시대 초기의 승려인 여암(麗巖)의 탑비.

939년 건립. 보물 제361호. 높이 350㎝. 

 

원래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미지산 보리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다.

전체적으로 비좌(碑座)인 귀부(龜趺)와 이수(螭首)의 비례가 맞지 않지만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탑비 형식을 따르고 있다.


머리는 용의 머리로 여의주를 물고 있으며,
등에는 6각 귀갑문이 새겨져 있고 둘레에는 연사상문양대(撚絲狀紋樣帶)가 돌려져 있다.
비신(碑身)의 제목은 "高麗國彌智山菩提寺故敎諡大鏡大師玄機之塔碑銘幷序"이며,
내용은 최언위(崔彦)가 짓고 이환추(李桓樞)가 구양순체로 썼다.
이수는 제액(題額)을 중심으로 구슬을 다투는 2마리의 용과 구름무늬가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대경대사는
880년에 헌강왕으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당나라의 운거대사(雲居大師)에게 심인(心印)을 얻어 귀국한 뒤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다.
930년 2월 17일 보리사에서 입적하자 그의 제자 최문윤(崔文尹)이 939년에 건립한 것이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楊平 菩提寺址 大鏡大師塔碑)


보물 제361호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대경대사의 탑비로, 보리사터에서 발견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대경대사는 9세에 출가하여 교종을 배웠으나, 나중에는 선(禪)을 연구하였다.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 태조는 그를 존중하여 보리사의 주지로 머물게 하였다. 69세에 이 절에서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대경’, 탑 이름을 ‘현기’라고 내렸다.


비는 여의주를 물고 일어선 납작한 돌거북 받침과, 거대한 비머리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균형을 잃고 있다. 그러나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무늬가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눈여겨볼 만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공적 등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였던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으며, 대사의 제자인 최문윤이 글씨를 새겼다. 글씨에는 획의 모서리를 날카롭게 살린데서 오는 강인함이 묻어나는데, 고려 전기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는 부분이다.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태조 22년(939)으로, 대사가 입적한 지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