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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순흥 청다리(霽月橋).경북 영주 본문

☆~ 풍경소리/경 북

순흥 청다리(霽月橋).경북 영주

푸른새벽* 2007. 2. 20. 00:15

 

 

청다리(霽月橋)


풍기에서 부석으로 가자면 소수서원 입구를 지나자 마자 바로 건너게 되는 다리가 있다
소수서원을 끼고 도는 죽계수의 상류
'내죽'버스정류장 앞에 놓인 이 다리 앞에는 오래된 비석이 하나 있다
거기엔 '康熙庚寅五月霽月橋' 곧 숙종 36년인 1710년에 세운 '제월교'라고 씌어 있건만
이곳 사람들은 이 다리를 '청다리'라고 부른다
이 청다리에는 두 가지 사연이 얽혀 있다


어릴 때 어른들이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리는 말을 한두 번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은 없을 터이다
서울 같으면 흔히 '염천교 밑에서 주워왔다' 고 하는 데 실은 그 원조가 바로 이곳 청다리이다
서원에 공부하러 온 젊은 유생들이 넘처니만큼 연사(戀事)도 많았을 것이다
청다리 근방에는 서원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을 뒷바라지하는 종들이 살았는데
유생들이 그 종이나 마을 처녀와 정분이 나서 그만 아이를 낳게 되면,
어떠 유생은 처녀와 짜고 부러 청다리 밑에 아이를 버리라 해놓고
자기가 우연히 다리를 지나다 그 아이를 주운 것처럼 했다
그리고 아이를 본가에 데려가서는 자기 아이임을 감추고
'다리 밑에서 불쌍한 아이를 주웠다'며 기르게 했다는 것이다
대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주웠기에 그런 말의 진원지가 됐을까?


본래 청다리는,
1966년 시멘트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두 해마다 새로 놓는 나무다리였다
이 청다리를 밤에 건너려면 동백꽃을 입에 물고 소꼬리를 붙들고 건너야 한다는 속설이 있다
동백꽃은 청다리에 나오는 귀신이 붉은 꽃을 보고 해꼬지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고
소꼬리는 무서워서 제대로 걸음을 떼어 놓지 못하는 사람이 붙잡고 가기 위한 것이라 한다
청다리에 나타나는 귀신이라니
버려진 후 부모가 끝내 찾아가지 않은 아이들의 원혼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그러난 그보다는 훨씬 역사적인 사연이 전해온다


청다리 조금 못미처 왼쪽 원단촌 마을 쪽으로 금성단(錦城壇)이 있다
금성단은 세종의 여섯째 아들이자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1426~1457)을 제사지내는 곳이다


금성대군은 사육신의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처를 떠돌다가 마침내 이곳에 귀양오게 되었는데
그때 단종은 바로 태백산 건너편 북쪽 오지인 영월 청령포로 위리안치되어 있었다
이에 금성대군은 순흥 부사 이보흠과 함께 모의하여 고을 군사와 향리를 모으고
경상도의 사족들에게 격문을 돌려서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였다
그러나 밀고로 발각되어 죽임을 당하였는데 그에 동조했던 많은 선비들 또한 희생되었다
이곳 죽계천이 붉게 물들어 40리 아래쪽인 동촌리까지 피가 흘러내려
지금도 그 마을은 '피끝'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일로 순흥은 '도호부'가 폐지되었고 많은 순흥사람들이 죽어갔으며 그 원혼들이
청다리 근처를 떠돈다는 것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