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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용담사터 칠층석탑(龍潭寺址 七層石塔).전북 남원 본문

☆~ 풍경소리/전 북

남원 용담사터 칠층석탑(龍潭寺址 七層石塔).전북 남원

푸른새벽* 2007. 4. 3. 23:56

 

 

 

 

 

 

 

 

 

 

 

 

 

 

 

 

 

 

 

 

 용담사터 칠층석탑(龍潭寺址 七層石塔)


용담사를 둘러싼 나즈막한 돌담을 들어서면 앞마당에 높이 9.95m의 칠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다
단층기단 위에 7층의 탑신부를 올렸는데,너무 길쭉하고 홀쭉한데다 지붕돌이 몸돌보다도 두꺼워서
매우 불안정해 보인다
1단의 굄이 조각된 네모난 기단석이 1층 몸돌을 받치고 있는데,
1층 몸돌은 우주를 모각한 판석 두 개를 세우고 그 사이에 돌 하나를 끼우는 수법으로 만들어졌다
2층 몸돌부터는 우주를 모각한 1매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체감률이 급격하며,
5층 몸돌은 1층 몸돌과 같은 형식으로 놓여 있다


지붕돌도 모두 돌 하나이며,낙수면과 지붕돌받침이 거의 같은 높이이다
낙수면이 경사는 완만하며 반전도 거의 없다
지붕돌받침은 6단에서 4층부터는 5단.4단.3단으로 줄어들고 있다
급격히 줄어드는 몸돌에 비해 체감률이 완만하고 지붕돌 위에 굄 장치도 없이 몸돌을 받치고 있어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불안정해 보인다
전남 화순 운주사의 탑들 중의 하나를 옮겨놓은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투박한 고려말기의 석탑이다.

 

용담사칠층석탑(龍潭寺七層石塔)


시도유형문화재 제11 (남원시)  
전북 남원시 주천면 용담리 292-1 


용담사는 백제 성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통일신라 후기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지고,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볼 때에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사찰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절이 세워지기 전에 근방에 있는 용담천에서 이무기가 나타나 사람들

을 괴롭혔는데, 도선국사가 이 절을 세운 뒤 부터는 행패를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전기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절은 사라지고, 현

재는 이 탑과 함께 석불입상(보물 제42호)과 석등이 남아 있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얹었는데, 너무 길쭉하고 홀쭉한데다가 지붕돌이 몸돌보다 두터워서 불안정한 모습이다

. 기단은 하나의 돌로 간단하게 되어 있다. 탑신의 몸돌은 2층에서부터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6단, 4

층은 5단, 5층은 4단, 6∼7층은 3단으로, 위로 오를수록 받침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윗면의 경사가 완만하고 네 귀퉁이도 희미하게 들

려 있다.


전체적으로 투박하고 불안정한 모습으로,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측된다. 탑신의 5층 몸돌은 편편한 돌 2개를 양쪽으로 세워 위를 받치

고 있는데, 이 불안정한 부분 때문에 탑이 기울어져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

 

 

 

 

 
칠층석탑과 석불입상 사이에
팔각지대석,팔각하대석,팔각간석,연꽃이 조각된 상대석 위에 화사석을 얹은
석등 하나가 있는데,
육중하면서도 별다른 장식이 없어 소박하게 느껴진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용담사석등(龍潭寺 石燈)


지정사항 없음
전북 남원시 주천면 용담리 299번지

 
신라 진성여왕시 도선국사가 사찰을 창건할 때 축조한 것이라 하며 높이 2.84m의 석등으로 간주석(竿柱石) 26㎝외 그 이하가 묻혀있어

서 알 수 없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