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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달마산 미황사(達磨山 美黃寺).전남 해남 본문

☆~ 절집.절터/전 남

해남 달마산 미황사(達磨山 美黃寺).전남 해남

푸른새벽* 2007. 6. 16. 09:31

 

 

 






 






 






 











 






 

 






 






 











 

 











 

 






 











 

 











 






 






 






 

 











 

 

달마산 미황사(美黃寺)


전남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247번지

 

미황사(美黃寺)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247번지 달마산(達摩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둔사의 말사이다.


해남은 위도상 우리 나라 최남단에 위치하는데 미황사는 해남의 사찰 중에서도 가장 끝에 자리한다.기암괴석이 수려한 달마산은 백두대간의 맥이 마지막으로 솟아올랐다는 두륜산(頭輪山)의 끝자락에 이어진 산으로서, 이곳의 지맥이 바다를 통해 한라산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절은 수려한 달마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사찰로서, 특히 미황사의 해질녘, 곧 절에서 바라보는 ‘석양에 지는 아름다운 낙조’에 대해서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곤 했다.

 

절의 창건 및 연기 설화에 관해서는 1692년(숙종 18)에 민암(閔暗, 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절이 749년(경덕왕 8) 의조(義照)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의 연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단지 고려 시대에 들어와 지원년간(至元年間, 1264∼1294)에 중국 남송(南宋)의 달관(達官)·군자(君子) 등이 절에 내왕했다고 하여 당시 절이 국내외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것을 알 수는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전기에도 사세를 꾸준히 유지해 온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의 연혁에 대해서는 1754년(영조 30)에 기록된 <미황사법당중수상량문>을 통해 중기 이후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상량문은 1982년 대웅전 복원 공사 때 발견된 것이다. 내용을 보면 임진왜란 이후 3차례의 중건이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중건은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건물의 일부가 소실되어 다음해부터 공사를 시작해서 1601년에 마무리되었다. 이 때의 불사는 만선(晩善) 스님이 담당했다. 그 뒤 1658년(효종 9)에서 1660년(현종 1)까지 두 번째 중창이 이루어졌는데, 이 때는 성간(省侃)·수신(脩信) 스님이 담당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1751년(영조 27)에 덕수(德修) 스님에 의해 시작되어 상량문이 씌어진 1754년에 마무리되었다. 이 때의 불사 내용은 1751년에 동서 양쪽에 금고각(金鼓閣)을 세우고 이듬해 기와를 바꾸었으며, 1753년에는 보길도(甫吉島)에서 목재를 실어 왔으며 대둔사와 마을에서 공사를 도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듬해 대웅전과 나한전을 완공했다.


한편 18세기에는 고승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 스님이 이곳에 머무르며 활발한 활동을 폈다. 스님은 특히 절이 바닷가에 위치하는 지역적 특성에 따라 물에 빠진 사람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한 수륙재를 지내기도 했다. 그래서 연담 스님의 문집인 《임하록(林下錄)》을 절에서 1799년(정조 23)에 펴냈으며 스님의 입적후 부도가 세워지는 등 스님과 절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19세기 후반인 1858년(철종 9)에는 영허 의현(靈虛義玄, 1816∼1874) 스님이 이곳에서 만일회(萬日會)를 개설하기도 했다(만일회에 관해서는 이 책 <여천 흥국사>편의 [만일염불회] 참고). 이 때의 만일회는 아미타신앙의 법회였다고 하는데, 이같은 내용은 초의(草衣) 선사가 지은 <미황사만일회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절은 조선시대 중후기에 걸쳐 이같은 융성을 거듭하다 근대에 이르러 이 고장 북평면 출신의 주지 혼허(渾墟) 스님이 중창을 위해 모금차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를 가다 배가 조난 당해 젊은 스님들이 몰살되고, 군고단 준비로 진 빚 때문에 쇠퇴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들어서서는 요사를 비롯한 전각들이 새로이 지어지고 있다. 1996년에는 만하당이 완공되었는데 현재는 요사로 쓰고 있으나 앞으로 선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대웅전 마당 아래 초석만 남은 옛 건물터에 누각을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