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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 청룡사 사적비(靑龍寺事蹟碑).경기 안성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안성 청룡사 사적비(靑龍寺事蹟碑).경기 안성

푸른새벽* 2008. 1. 18. 00:59

 




 

 







 

 

청룡사 사적비(靑龍寺事蹟碑)


청룡사 입구에 사적비가 서 있다.숙종46년(1720) 청룡사 중수를 마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절 입구에 세운 비석이다..높이 189cm, 폭 73cm, 두께 31cm인 이 비 는 방형 기단석에 비신을 앉히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은 평범한 비석이다.비문은 동현거사 나준(羅浚)이 짓고,글씨는 중훈대부 직산현감 황하민(黃夏民)이 썼으며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 김진상(金鎭商)이 전액(篆額)하였다.


청룡사는 본래 고려 원종6년(1265)에 명본국사가 창건하였고 대장암이라 이름했던 것을 나옹화상이 크게 중건하였는데,이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고 서기가 가득한 가운데 청룡이 오르내리매 나옹선사가 이를 보고 서운산 청룡사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는 내력 등을 기록하고 있다.풍수설에 따르면 이 절의 집자리가 마치 청룡의 형상과 같다고 한 데서 청룡사가 비롯되었다고도 한다.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4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청룡사사적비(靑龍寺事蹟碑)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경기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62-4 


사적비란 어떠한 사건에 관련된 사실이나 자취를 기록한 것이다. 청룡사 절내의 부도밭으로 가는 입구에 서 있는 이 비는 청룡사의 중

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 이름지어 창건하였고, 공민왕 13년(1364) 나옹왕사가 크게 중창(원래의 절을 고

쳐 새롭게 함)하면서 절의 이름도 청룡사로 바꾸었다.


비는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인데, 특이하게도 지붕돌 귀퉁이마다 네마리의 용이 머리를 대고 서려 있는 모습

이다. 비문에는 나옹이 절을 중창할 때의 일과, 그 뒤 조선 숙종 때 대웅전을 비롯하여 여러 건물을 중건한 사실 등을 기록하고 있다.


조선 경종 원년(1721)에 세운 것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