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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백파선사비(禪雲寺 白坡禪師碑).전북 고창 본문

☆~ 풍경소리/전 북

고창 선운사 백파선사비(禪雲寺 白坡禪師碑).전북 고창

푸른새벽* 2008. 4. 9. 00:53

 

 

 

 

 

 

 

 

 

 

 

선운사백파율사비(禪雲寺 白坡律師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2호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 


백파율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이 비석은 선운사 입구로 들어서서 오른쪽 숲 속의 부도 밭에 세워져 있다.


조선 철종 9년(1858)에 건립한 것으로 비명(碑銘)은 조선시대의 대명필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필적이다.


조선조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오랜 침체기를 헤치며 조선후기 불교의 참신한 종풍(宗風)을 일으킨 화엄종주(華嚴宗主) 백파율사의 업적이 적혀 있는 이 비석은, 네모난 받침 위에 몸통을 세우고 지붕돌을 씌운 모습으로 되어 있다. 
*문화재청자료*

 

 

선운사 백파선사비(禪雲寺 白坡禪師碑)


전북 고창 선운사 부도밭에 있는 비로 추사가 타계하기 1년 전인 1855년(철종6)에 쓴 이 비문은
행서글씨체로 추사 말년의 최고 명작으로 평가되는 금석문으로 비는 1858년에 세워졌다.
이 비문에는 추사가 쓰지 않은 부분이 두 군데인데
숭정기원후4무오5월 일입(崇禎紀元後四戊午五月 日立)이라는 부분과
마지막 줄로 아마 찢어지거나 무슨 사정이 있어서 누군가 대필한 것으로 추정 된다.


다음은 추사가 쓴 백파선사비문의 전문이다

 

華嚴宗主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화엄종주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

[마음의 청정함(佛)을 대기(大機), 마음의 광명(法)을 대용(大用)이라 함]

我東近無律師 一宗, 惟白坡 可以當之, 故以律師書之. 大機大用, 是白坡
아동근무율사일종 유백파 가이당지 고이율사서지 대기대용 시백파

八十年籍手着力處. 或有以機用殺活, 支離穿鑿, 是大不然. 凡對治凡夫者,
팔십년적수착력처 혹자이기용살활 지이천착 시대불연 범대치범부자

無處非殺活機用, 雖大藏八萬, 無一法出於殺活機用之外者. 特人不知此義,
무처비살활기용 수부장팔만 무일법출어살활기용지외자 특인불지차의

妄以殺活機用, 僞白坡拘執着相者, 是皆???樹也. 是鳥足以智白坡也.
망이살활기용 위백파구집착상자 시개부유감수야 시조족이지백파야

昔與白坡, 頗有往復辨難者, 卽與世人所妄議者大異. 此個處, 惟坡與
석여백파 파유왕복변난자 즉여세인소망의자대이 차개처 유파여

吾知之. 雖萬般苦說人, 皆不解悟者, 安得再起師來, 相對一笑也. 今作白
오지지 수만반고설인 개불해오자 안득재기사래 상대일소야 금작백

坡碑面字, 若不大書特書於大機大用一句, 不足爲白坡碑也. 書示雪竇白巖
파비면자 약불대서특서어대기대용일구 불족위백파비야 서시설두백암

諸門徒, 果老 記付, 貧無卓錐, 氣壓須彌. 事親如事佛, 家風最眞實. 厥名
제문도 과노 기부 빈무탁추 기압수미 사친여사불 가풍최진실 궐명 

兮亘璇, 不可說轉轉.
혜긍선 불가설전전

阮堂學士 金正喜 撰幷書
원당학사 김정희 찬병서

崇禎紀元後四戊午五月 日立.
숭정기원후사 무오오월 일입

 

[해 석]

우리나라에는 근래에 율사(律師)로서 일가를 이룬 이가 없었는데 오직 백파만이 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고로 여기에 율사라고 적은 것이다.
대기대용(大機大用), 이것은 백파가 80평생 가장 힘들인 것인데,
혹자는 기용(機用)과 살활(殺活-들어남과 감추어짐)을 지루하고 억지스럽다고 하지만
이는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무릇 보통사람들을 대치함에 어느 것이나 살활과 기용 아닌 것이 없으나,
비록 팔만대장경이라고는 하나 어느 것 하나 살활과 기용에서 벗어난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뜻을 모르고 허망 되게 살활과 기용을 갖고 백파가 고집했다고 말하는 것은
모두 하루살이가 느티나무를 흔들려는 격인 것이다.
이래서야 어찌 백파를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옛날에 내가 백파와 더불어 여러 번 왕복서한으로 변증한 것은
세상 사람들이 헛되이 의논하는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오직 백파와 나만이 알고 있을 따름이다.
비록 만 가지 방법으로 입이 쓰도록 사람을 설득하려 해도 모두 깨닫지 못하니
어찌하여 백파를 다시 일으켜 서로 마주보고 한번 웃어볼 수 있을 것인가!

이제 백파의 비문을 지으면서 만약 대기대용 이 한 구절을 크고 뚜렷하게 쓰지 않는다면
그것은 백파비로서는 부족하다 할 것이다.
설두, 백암 등 문도들에게 이것을 써주면서
과로(과로:추사의 별호. 즉 과천에 사는 노인)는 다음과 같이 부기하노라.

가난하기는 송곳 꽂을 자리도 없었으나 기상은 수미산을 덮을 만 하도다
어버이 섬기기를 부처님 모시듯 하였으니 그 가풍은 정말로 진실하도다
속세의 이름은 긍선이나 그 나머지야 말해 무엇하리요.

완당학사 김정희가 찬하고 또 쓰다.

註:大機大用이란 마음의 청정함(佛)을 大機라 하고,
마음의 광명(法)을 大用이라함(白坡스님의 禪사상에서 기초).

 

 

(백파선사비를 만나러 갔던 때가 2004년 초여름이었다.그 때는 선운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 부도밭에 백파선사비가 있었는데

2007년 겨울에 선운사를 다녀 온 이의 말에 의하면 백파선사비는 선운사경내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곳에 백파선사비를 게시 하기 위해 백파선사비문의 전문이 필요해서 여러곳에서 그 자료을 얻으려 노력하였으나 힘에 부쳤었다

송구한 마음  무릅쓰고 이곳에서 인연이 된 방랑자님께 부탁을 드렸더니 번거롭다 않으시고 백파선사비문의 전문을 보내주셨다

이곳을 빌어 방랑자님께 감사의 맘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