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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신복사터삼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강원 강릉 본문

☆~ 풍경소리/강 원

강릉 신복사터삼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강원 강릉

푸른새벽* 2008. 5. 29. 08:02

 

 

 

 

 

 

 

 

 

 

 

 

 

 

 

 

 

 

 

 

 

 

신복사터삼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


기본적으로는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우고 그 위에 상륜부를 올려놓은 형식이지만,
쌓아 올린 수법이 매우 특이하다
1,2층 기단 사이와 탑신 각층의 몸돌과 지붕돌 사이에 별도의 괴임돌을 놓은 것으로
마치 이형탑 같은 느낌을 준다
이와 같이 별도의 괴임돌을 놓는 양식은 고려 시대의 특징으로,
특히 신복사터 삼층석탑에서 강조된 느낌이다


탑의 각 부재는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데,
층마다 끼여 있는 별개의 괴임돌 때문에 높이가 높아져 전체적으로 균형을 이룬다


각층마다 놓은 별도의 괴임돌과 더불어,
귀꽃이 있는 복련이 조각된 지대석,하층 기단 면석의 안상,1층 몸돌의 문비를 달았던 흔적 등은
모두 탑에 화려함을 주는 요소들이다
상륜부에도 노반,복발,앙화,보륜,보주 등 각 부재가 완전하게 남아 있다


흔히 볼 수 없는 양식의 석탑이라 한참 눈길을 주게 된다
전체 높이는 4.55m,보물 제87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신복사지삼층석탑(神福寺址三層石塔)


보물 제87호 
강원 강릉시 내곡동 403-2 


신복사의 옛 터에 남아있는 탑이다. 신복사는 통일신라 때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창건한 절로,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즉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배어 낳게 되었다. 집안 사람들이 아이를 내다버렸으나, 아이의 주위로 빛이 맴돌아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그 이름을 범(梵)이라 하였다. 범이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탑은 2층의 기단을 쌓고 3층의 탑신을 올린 것으로, 각 부분의 모습들이 특이하다. 바닥돌의 윗면에는 연꽃이 엎드려 있는 듯한 모양의 조각을 하여 둘렀고,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안상을 3개씩 새겨 넣었다. 탑신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얹어 놓았다. 탑신에는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데, 1층의 몸돌에 이를 안치하는 방인 감실모양의 조각이 있다. 1층의 몸돌에 비해 2·3층은 갑자기 그 크기가 줄어들어 매우 얇다. 지붕돌 역시 얇아서 귀퉁이끝은 치켜올림이 희미하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는 3단이다.


꼭대기에는 드물게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있는데, 각 부분의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탑의 앞쪽에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두 손을 받치듯이 들고 있는 보살석상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같은 강원도 내의 월정사팔각9층석탑과 비슷하여 이 지방의 특색이 아닐까 짐작된다. 탑의 기단과 몸돌의 각 층 밑에는 널돌로 괴임을 넣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한 아래층 기단에 안상이 새겨진 것이나,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3단으로 되어있는 점도 고려 전기의 석탑양식을 잘 따르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