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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월출산 무위사(月出山 無爲寺).전남 강진 본문

☆~ 절집.절터/전 남

강진 월출산 무위사(月出山 無爲寺).전남 강진

푸른새벽* 2009. 2. 17. 14:10

 

 











 

 











 

 






 











 

 






 











 

 











 






 

 











 

 






 






 











 

 











 

 

 월출산 무위사(月出山 無爲寺)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


월출산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절 이름을 관음사라고 했고 그후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중창하고 갈옥사(葛屋寺)로 바꿨으며'고려 정종 우너년(946)에 선각(先覺)대사가 3창하고 모옥사(茅屋寺)로 개명,조선 명종 10년(1555)에 태감(太甘)선사가 4창하고 비로소 절 이름을 무위사로 고쳤다는 내용이『무위사 사적기』에 나온다.이 사적기는 영조 15년(1739)에 당시 주지였던 극잠이 절을 보수하면서 쓴 것인데 당시까지 전해 오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은 듯,믿기 어려운 점이 많다.


무위사는 무위갑사라는 이름으로 10세기 초 이전에 창건되었고 신라 말에 왕건과 가까웠던 선각대사가 머물던 기간에 사세(寺勢)를 키웠다.
조선 시대 들어와 태종 7년(1407)에는 각지의 명찰을 골라 여러 고을의 자복(資福)사찰로 지정하는 가운데 천태종 자복사의 하나로 꼽혔다.
이전에 선종 사찰이었던 무위사가 어느 때부터인가 천태종 절이 된 데는 고려 후기의 백련사에서 천태종 백련결사가 활발히 활동했던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한다.


세종 12년(1430)에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모시는 극락전이 지어지고 성종 7년(1476)에 극락전 안에 아미타삼존도,아미타여래내영도를 비롯한 벽화가 그려졌다.이는 당시 무위사가 수륙사(水陸寺)로 지정되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도 화를 입지 않아서 그 웅장함과 화려함이 한 도에서 으뜸이었다던 무위사는 그후 점차 퇴락하여 앞의 사적기가 씌어진 영조 15년(1739)에 이르면 미타전(지금의 극락보전).천불전.시왕전만이 남았다.일제강점기에 극락전이 국보로 지정되었고 1974년에 극락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통째로 뜯어 내어 벽화보존각에 따로 모신 것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