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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함양 장수사지(長水寺址).경남 함양 본문

☆~ 절집.절터/경 남

함양 장수사지(長水寺址).경남 함양

푸른새벽* 2009. 3. 26. 12:12

 





 





 

 





 









 





 

 





 





 





 

장수사터(長水寺址)

 

경남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2번지


텅 빈 절터에 거짓말처럼 버젓이 서있는 일주문
 

안의면 소재지를 지나자 이내 용추골 들머리이다. 단풍은 이제 막 시작인 듯, 그러나 들머리부터 펼쳐진 계곡의 정경이 여간 아니다.
불쑥 아무 곳이나 멈춰 서도 그곳이 곧 선경이니 그 빼어난 풍광은 나라 안 어디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지 싶다. 더군다나 예전에는 이 골짜기를 두고 심진동(尋眞洞)이라고 했다. 무엇을 찾는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무엇일까. 참 나일까. 진리일까. 그러나 진리를 찾으면 내가 바로 보이고 내가 바로 보이면 진리를 놓칠 까닭이 없으니 곧 같은 말이리라.


그것을 찾기에 장수사터는 나라 안 절터 중 으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곳을 거니는 사람은 누구나 고독해지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무릇 자기가 보이는 때는 외로울 때이다. 그 끝, 절대고독의 순간에야 비로소 낱낱이 파헤쳐진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언제나 그랬다. 장수사터를 거닐 때마다 나에게는 외로움이 덕지덕지 묻어났다. 그 독특한 뉘앙스의 외로움은 다른 어떤 절터에서도 맛보지 못한 것이었다. 또한 그 짙은 고독 속에서 보이는 것은 부처님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만 빈약하기만한 나의 현재일 뿐이었으니 나에게는 잊히지 않는 절터인 것이다.

 
오른쪽으로 부도밭을 지나자 멀리 일주문이 보였다. 아! 그것이다. 절터에서 만나는 일주문. 그것이 나를 그토록 고독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절터를 찾는 사람들의 상식을 깨뜨리고 버젓이 서 있는 일주문. 나라 안의 그 어떤 절터에서도 볼 수 없는 그것이 동살을 받아 환하게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주저하고 있었다. 그 문 안으로 들어서기가 저어했던 것이다.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다시 외로움에 젖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기만 할 뿐, 마음에 차 오르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그에게 가득 동살이 드리울 무렵에야 문 안으로 들어섰다. 채 5분도 걷지 않아 신발은 이슬에 젖고 새벽 한기처럼 엄습해 오는 허허로움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문 밖으로 나와 먼 곳에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나 나는 어느새 다시 일주문을 지나 절터를 거닐고 있었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절터에 가득 피어난 수크렁만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릴 뿐이었다. 묵은 돌 몇이 옛 터에 박혀있지만 그것으로 지난날의 모습을 어찌 가늠하겠는가. 어림도 없는 노릇이다.
잼처 발길 닿을 때마다 톺아보지만 절집의 흔적은 그 어느 곳에도 남아 있지 않다. 오늘이라고 다르지 않다. 버릇처럼 고개를 숙이고 거닐어 보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걷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누릇누릇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 풀들이 오히려 거울이 되고 만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는 거울, 하지만 그들이 되비치는 것은 맑은 가을햇살과 푸른 하늘 그리고 구름과 같은 아름다운 정경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것이 장수사터의 매력이다. 절터에서 만나는 나무로 만든 일주문과 그 문을 들어서면 눈길 둘 곳이 쌀 한 톨만큼도 남아 있지 않은 당혹스러움이 발생시키는 고독인 것이다. 문이라는 것은 그 어떤 공간으로의 넘나드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건만 장수사터 일주문은 영화 매트릭스의 문과도 같다. 영화 속에서 문을 열면 펼쳐지던 주인공이 처한 현실과는 다른 당혹스러운 장면들처럼 장수사터의 일주문 또한 그와 같은 것이다. 그 문은 현재의 공간에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공간으로 들어가게 만들어놓고는 짐짓 모른 체 심진동 들머리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돌로 만들어진 그 무엇들은 하나도 남지 않고 오히려 나무로 만든 문만 남았으니 그 역설적인 당혹스러움이 절터를 더욱 절터답게 한다. 텅 빈 공간이련만 되레 그것이 충만해 보이는 것 또한 장수사터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용추계곡에 흐르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그 마저도 느끼기 힘들 것이다. 간혹 덕유산 마루에서 불어오는 바람 한점과 용추폭포의 경천동지하는 물소리가 아니라면 어찌 이 고요를 견디겠는가.
주렁주렁 무르익은 감을 달고 있는 나무가 있는 곳쯤은 금강문이나 사천왕문이 있었을 법하다. 그 나무에 기대 생각했다.
3일 동안만이라도 이곳에 머물고 싶다고 말이다.
*이지누 지음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