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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三神山 雙磎寺).경남 하동 본문

☆~ 절집.절터/경 남

하동 쌍계사(三神山 雙磎寺).경남 하동

푸른새벽* 2009. 3. 29. 22:02

  





 

 









 

 









 

 





 









 





 





 





 

 









 





 

 









 





 

 









 

 

 








 





 

 





 





 





 









 

 





 









 





 

 





 





 









 

 









 

 









 

 





 









 

 





 





 





 





 





 





 





 





 









 

 





 

삼신산 쌍계사(三神山 雙磎寺)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번지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4) 의상의 제자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삼법은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 삼신산(三神山,금강산.한라산.지라신을 일컬음) 눈 쌓인 계곡 위 꽃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귀국하여 현재 쌍계사 자리에 이르러 혜능의 머리를 묻고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이후 문성왕 2년(840) 진감선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으며,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임진왜란 때 크게 소실되었으며,인조 10년(1632) 벽암(碧巖)스님에 의해 중건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매표소 바로 앞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은 절의 좌우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두 갈래의 물이 만나 합쳐진 것으로,절이름이 쌍계(雙磎)인 연유를 짐작하게 한다.


'삼신산 쌍계사'라는 현액이 걸려 있는 화려한 다포집인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문수.보현 동자(문수동자는 사자를 타고 보현동자는 코끼리를 탔다)를 모신 맞배집 금강문이 나온다.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역시 맞배집인 천왕문이다.안으로 들어서면 누문인 팔영루(八泳樓)와 마주치게 되며,팔영루를 통과하면 대웅전에 들어서게 된다.이들 건물은 모두 일직선상에 가깝게 놓여 있으나,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층단이 계속되고 또한 중간중간에 다른 건물들이 비대칭적으로 들어서 있어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깊숙이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느껴진다.


팔영루 왼쪽에 경내의 주축을 이루는 일주문.팔영루.대웅전 영역에서 비껴나 부축을 이루는 일련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경내 주축과 계곡을 사이에 두고 청학루로 열리는 금당 영역이 그것이다.욱조정상탑(六祖頂相塔)을 모신 탑전인 금당,팔상전 등이 여기에 있으며,쌍계사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터로 추정되고 있다.일직선상이 아니라 높이를 달리하여 서로 맞물리게 배치된 건물들이 상승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일반인의 출입은 통제돼 있다.


쌍계사내에는 대웅전(보물 제500호),진감선사부도비(국보 제47호),쌍계사부도(보물 제380호),적묵당(경남 문화재자료 제46호),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제925호) 같은 지정 문화재를 비롯하여 명부전 앞의 마애불,대웅전 앞의 석등,각 전각의 탱화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현판과 주련 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일주문의 현판 '삼신산 쌍계사' '선종대가람'이라는 글씨는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 ~1933)의 것이고 팔영루의 현액은 누구의 글씨인지 알 수 없으나 활달하여 눈길을 끈다.'대웅전' '천왕문' '명부전' '적묵당' 등의 글씨도 모두 눈여겨볼 만하다.


글씨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진성여왕 1년(887)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진감선사 부도비이다.대웅전 앞에 정면이 아닌 측면으로 서 있는 모양새가 일직선축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준다.부도비는 문장으로 보거나 서체로 볼 때에도 매우 우수하여 국보로 지정돼 있다.마멸이 심하여 육안으로 식별하기는 힘들지만,다행히도 영조 때 만들어놓은 목판이 전해지고 있어 내용을 알 수 있다.


쌍계사 소속 암자로는 국사암.칠불암.불일암 등이 있다.


쌍계사는 차(茶)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매표소 가까이 계류가에 1981년에 세운 '차시배추원비(茶始培追遠碑)'가 있고 화개에서 쌍계사로 이어지는 벚꽃길에도 '차시배지(茶始培地)'기념비가 있다.


차는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들어왔고 흥덕왕 3년(828) 김대렴(金大簾)이 당나라에서 차나무 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김대렴이 차를 심은 이후 진감선사가 쌍계사와 화개 부근에 차밭은 조성.보급했다고 하는데 아직도 이 길가에서는 차밭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