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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무봉사(密陽 舞鳳寺).경남 밀양 본문

☆~ 절집.절터/경 남

밀양 무봉사(密陽 舞鳳寺).경남 밀양

푸른새벽* 2010. 7. 11. 21:06

 

 





 





 





 





 





 





 





 





 





 









 

 





 





 





 

밀양 무봉사(密陽 舞鳳寺)


경남 밀양시 내일동 3

 
무봉사(舞鳳寺)는 밀양시 내일동 37번지 영남루(嶺南樓) 옆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다.


절 아래로는 밀양강이 흐르고 그 강 언덕에 우뚝 솟은 영남루와 함께 그림 같은풍광을 이루어 옛날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곳이다. 무봉사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는 영남루의 가을 달빛과 함께 이른바 밀양팔경 중의 하나다.

 

무봉사는 신라 후기인 773년(혜공왕 9)에 법조(法照) 대사가 창건하였다. 당시 대사는 영남루 자리에 있었던 영남사(嶺南寺)에 참배하러 왔다가 큰 봉황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마침내 봉황이 앉은 자리에 절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한편 조선후기에 이 고장 출신의 신국종이 편찬한 「무봉암중건기」에는 다른 이야기가 전한다. 즉 고려시대 고승 범률 국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절 이름을 무봉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밀양의 지세가 봉황이 춤추는 형국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지금의 삼문동에 봉황이 알을 많이 낳을 수 있도록 밤나무를 심어 안락한 환경을 만들었고, 사방의 암자에서 종소리를 울려 봉황을 날게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절의 창건에 관한 이야기가 다르게 전한다. 또한 각각 창건주로 등장하는 혜공왕대의 법조대사나 고려의 범률 국사에 대해서도 다른 역사기록에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앞의 「무봉암중건기」에 절의 창건을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다. 즉 1359년(공민왕 8) 영남사에 화재가 일어나 전각이 전소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에 이웃의 무봉암을 무봉사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영남사의 피해가 워낙 커서 중창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작은 암자였던 무봉암에 영남사의 역할을 대신하게 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당시 영남사에 모셔져 있다가 간신히 화마를 피한 신라시대의 석조여래좌상도 이렇게 해서 무봉사로 봉안되었다. 이처럼 무봉사는 고려말까지는 영남사의 작은 부속암자였으나, 화재 이후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갖게 되었으니, 이 시기가 절의 실질적인 창건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후 무봉사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와중에서 소실되었다가 1605년 혜징(慧澄) 대사가 중건하면서 법당과 칠성각·수월루를 새로 지었다. 1628년(인조 6)에는 경의(敬儀) 대사가 다시 중창하였고, 근대에 들어 1899년(광무 3)에 경봉(慶蓬) 스님이 중건하였다. 1942년에 여러 전각을 증축하였고, 조계종의 출범이후 통도사의 밀양포교당으로서 법맥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