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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충북 청원 돌아보기.백족산 백족사 본문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사람에 대한 기억을 애써 떨친다
지금 나는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소진할 정서는 필요치 않다
답사길 적당하게 따라붙어 나를 덮칠 기회만 노리는 피로에 곁을 허락하면 안된다
피로란 놈에게 한 번 잡히면 도저히 떼 낼 도리가 없으니까
계산리탑이 있는 계산리에서 상야리로 향한다
상야리 백족산 기슭엔 백족사가 있고 백족사엔 석불과 탑이 있다
커다란 표지석이 이곳이 상야리임을 알려준다
마을 표지석이 있는 곳을 지나 얼마 되지 않은 거리에 백족사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있다
절로 오르는 길의 경사가 급하다
급하게 꺾이고 또 꺾이며 이어진 경사길을 '오 주여'를 반복하며 자동차를 달래고 또 달랜다
그나마 작은 시멘트블록으로 찻길을 텃는데
자동차바퀴 두 개가 지나는 좁은 사이에 한 줄로 다부룩하게 자란 잡초가 모질다
운전경력 이십년이니 초보는 아닌데
백족사까지 오는 길이 만만치가 않았다
어렵사리 찾아 온 백족사는 아주 작은 절집이다
한낮의 뙤약볕도 백족사 절마당에선 한 발 물러나 있다
백족사 법당 옆 잘 가꾸어진 잔디밭 가운데 오두마니 서 있는 백족사탑
1940년대에 발견되어 복원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탑은 조성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이라는데
백족사의 창건내력이 전해지지 않으니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탑을 이루는 각 부재가 얼기설기 한 것이 제 짝만으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지 싶다
창건연대를 알 수 없는 작은 절집 백족사 마당에
이런 못생긴 탑이나마 절 마당을 지키고 있어 백족사는 갖춰진 절집이라는 느낌이 든다
작은 탑이 서 있는 곳 뒤쪽 한 단 위에 버티고 있는 붉은 안내문에 눈이 어지럽다
산불조심하라는 경고문 처럼...
붉은 안내문은 산신각지붕위로 보이는 자연석이 옆으로 앉아 있는 불상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름하여 산왕불(山王佛)
천년만년 세월 좌정하고 계신다는
탑과 석불을 뵈러 온 백족사지만 산신각에 더 오래 머물렀던 이유는...
이렇게 이쁜 산신각의 처마장식 때문이었다
오래된 단청 그대로인 것도 좋은데 두 마리 용의 모양새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산신각처마에 용머리장식을 한 것도 특이한데 장식된 용머리가 이쁘고 귀엽기까지 하다
왼편의 용머리는 익살스럽게 옆을 쳐다보고
오른편의 용머리장식은 혀와 목을 한껏 길게 빼고 위를 쳐다보고 있다
동글동글한 용머리를 만지면 보들보들하고 말랑말랑 할 것 같으니
용이 아니라 집에서 기르는 사슴같다
아무도 없는 백족사에서 산신각을 보고 옆쪽의 법당으로 들어갔다
백족사 대웅전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부처님이라기 보다는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같은 자상하고 푸근한 모습의 이 석불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원형이 많이 변형되었다고 하지만
하대석·중대석·상대석으로 이루어진 연화대좌도 원형대로 남아 있어
백족사 자리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절터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며
충북지역에서는 그리 흔치 않은 불상이라 한다
눈 깜짝할 사이 도난당할 뻔 했다던 백족사 대웅전 한 켠에 걸린 시왕도에 대한 설명은
발소리 듣고 요사채에서 내다보시던 젊은스님에게 들었다
대웅전 앞 마당에 있는 백족사 우물
백족사 대웅전 앞 마당은 탑이 우물에게 자리를 양보한 듯 하다
잠깐 발을 담근 세조임금의 발이 갑자기 하얗게 변해버렸다던 영험한 우물이어서일까
나는 발은 그만두고 세수라도하고 싶었다~ㅎ
언제 세워졌는지 절집의 내력은 어떤건지를 알려주는 기록은 전혀 없는 백족사
전설에 의하면
조선 세조가 이 곳을 지나다가 발을 씻는데 발이 희었다고 해서 백족산이라고 산명이 붙혀졌고
백족사는 본래 '침진암(尋眞庵)'이라는 암자였다가 이 곳 산명에 따라 명칭을 변경하였다고 하지만
현재의 절집은
조선후기 어느 순간 폐사가 되었다가 1930년대에 다시 사찰의 역사를 이었다
사찰의 역사를 잇게 된 사연이 또한 사내에 전하고 있는데...
1920년대에 청주가 고향인 송씨가 일본에 가서 살고 있을 때 나이가 40이 넘었는데도 자식이 없어 항상 걱정이었는데 어느 날 꿈에 고향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꿈에서 고향의 백족산을 거닐고 있는데 이때 산신령이 나타나 “나는 백족산 산신령이다. 지금 저 쓰러진 법당 속에 부처님이 파묻혀 계시니 네가 부처님을 구해주면 네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하였다 한다.
꿈을 깨어 급히 고향으로 돌아와 백족산으로 향하니 거기에는 실제로 쓰러진 법당이 있었고 잔해 사이에 돌부처가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정성으로 초옥을 지어 이곳에 돌부처를 모시고 정성들여 기도한 후 결국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 뒤로 백족사의 석불에게 소원을 빌면 자식을 점지해 준다는 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실제로 영험이 있었다고 전해진다.(전통사철정보에서 발췌)
지금 백족사는 납골당을 운영하여
이승 떠난 망자들이 편하게 쉬는 영원한 안식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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