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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간사지당간지주(南澗寺址幢竿支柱).경북 경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경주 남간사지당간지주(南澗寺址幢竿支柱).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9. 11. 10. 15:20

 

 

 









 





 





 





 





 





 





 





 

 









 

 

남간사지당간지주(南澗寺址幢竿支柱)


남간사지는 경주 남산의 서쪽 기슭 남간마을 일대에 남아 있는 절터이다.남간사는 원화(元和)연간(806~820)에 이 절의 승려였던 일면(一念)이 이차돈의 순교 내력을 실은 『촉향문예불결사문』을 지었으며,7세기 말경 승려 혜통(惠通)의 집이 있었다는 은천동(銀川洞) 옆에 있었던 사찰이었다.남간사지로 추정되는 지역에는 석정(石井).초석.팔각대석.긴사각형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당간지주 뒤편으로 저수지가 있는데,석탑재가 잠겨 있다고 한다.따라서 중심 사역은 저수지 일대를 중심한 지역임을 알 수 있다.


두 지주는 동일한 양식으로 논 가운데 동서로 마주 서있는데,지주 각 면에 총탄 자욱이 많이 남아 있어 역사의 상흔을 느끼게 한다.현재 지주 하단부는 지면에서 50Cm정도가 치석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원래는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간대석은 결실된 상태이다.지주부의 각 면은 고르게 다듬었으며,정연한 치석 수법을 보이지만 별다른 장식은 없다.

 

외면의 외곽 모서리는 지주 꼭대기에서 아래로 217Cm정도 까지만 각을 깎아 부드럽게 하였다.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평평하다가 호선을 그리도록 치석하였다.


당간을 고정하는 간은 간구와 간공을 시공하여 끼우도록 하였다.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十 자형으로 특이하게 시공하였다.이것은 당간에 연결되는 간을 안정되고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한 수법으로 보인다.간공은 상하에 2개를 시공하였는데,원형으로 관통되었다.관통된 간공 가운데에 거친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주 양쪽에서 뚫어 들어가 가운데에서 만나게 하여 시공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당간지주는 장식은 없지만 단아한 인상을 주고 있다.또한 각 면의 치석 수법,간구와 간공의 시공 수법 등이 사천왕사지나 경주 보문리 당간지주와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한편 남간사는 늦어도 애장왕(800~809)이나 헌덕왕(809~826) 이전에 창건되어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사지에서 출토된 화려한 기와들은 남간사가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번창하였던 사찰임을 알려주고 있다.이러한 사실들로 보아 남간사지 당간지주는 사천왕사지 당간지주로부터 영향을 받아 8세기 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남간사지당간지주(南澗寺址幢竿支柱)


보물 제909호
경북 경주시 탑정동


이 당간지주는 남간사의 옛터에서 약 500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논을 경작하면서 지주의 아래부분이 약 50㎝정도 드러나 있으며, 바닥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부가 없어서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던 받침돌도 찾아볼 수 없다. 지주 안쪽 면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세 군데에 뚫어 놓았는데,

특히 꼭대기에 있는 것은 십(十)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형태의 당간지주로, 보존된 상태도 양호한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