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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여름 한나절 본문

☆~ 雜想/일상의 소소함

여름 한나절

푸른새벽* 2010. 8. 4. 11:33

"어디 산좋고 물좋은 계곡 없나 알아봐.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고 조용하고 깨끗한 곳으로~"

열흘 전 친구에게 받은 전화였다.

맨날 뽈뽈거리고 다닌다고 날 더러 이 여름에,휴가철에 사람 많지 않은 계곡을 알아보라고...

 

뭐 주저할 것 없다.충북 괴산군 연풍면 신선암봉오르는 길의 계곡.거기 좋다.집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언젠가 딸아이와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었던,딸아이는 두고두고 그 계곡을 이야기한다.

경기도에 사는 내가 그 계곡을 안 것은 괴산에서 근무했던 친구덕분이다.

괴산의 35대 명산을 모두 섭렵한 그 친구는 등산로초입의 계곡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 친구덕에 가 보았던 신선암봉 초입의 계곡은 무엇보다 알려진 곳이 아니어서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 좋았다.

 

친구라해도 근래에 들어 어찌된 셈인지 모두들 바쁘다고 자주 만나지 못했다.

둘은 할머니가 되어 손주돌보느라 바쁘고 또 한 친구는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 바쁘고.

나는...별로 바쁘지 않은데~ㅋ

 

"이렇게 살아서 뭐하노~ 이제 살아온 날들보다 살 날이 더 짧으니 자주 만나기라도 하자.우선 올 여름에 계곡에 한번 가자~"

넷이 의기투합해서 만나기로 한 날이 7월 30일.

 

나와 같이 하남시에 사는 친구와 아침 5시 30분에 만나 복정역에 도착한 것이 오전 6시.

그곳에서 분당과 양재동에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기사는 내가 맡는다.

하늘은 몹시 흐려있다.어쩌면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때~ 놀러가는데~ㅎ

 

 

 

 

 

 

 충북 괴산군 연풍면 신선암봉으로 오르는 등산로 초입의 계곡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8시 40분.

휴게소 한군데 들러 커피한잔 느긋하게 마시고와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계곡의 초입 물놀이 명당터에도 사람이 없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곳은 계곡의 초입이며 주차한 곳에서 멀지 않기에

좀처럼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려운데...

 

계곡의 더 위쪽으로 올라가자했으나 친구들이 반대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온 보따리들이 무겁다나 뭐라나.

 

 

 

 

 

 

 

 

 

 

 

 

명당터에 자리를 깔고 가지고 온 보따리들을 풀기 전 신발부터 벗었다.

 

네 명의 신발이 모두 푸른계열의 색이다.

우째 맞추기라도 한 듯이. 

 

그러니까 친구지~~

 

 

 

 

 

 

 

 

 

 

 

 

 계곡의 물은 발을 담그어보니 차갑기는해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는 아니다.발만 담그는 것은 자연보호법에 저촉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

 

발 담그려고 가벼운 신발을 가지고 왔는데 잘했다.

 

자갈이 닿아도 아프지 않고 또 물에 젖어도 금방 마르는 것.

작년에 사 놓고 한 번도 신어보질 못했었는데

오늘 친구들 덕분에 새 신발도 신어보고~ 

 

"진짜 진짜 좋은 곳이네"

"여긴 어떻게 알았냐~ 다음에 가족들과 한 번 더 와야겠다"

"하여튼 많이 다니니까 모르는 곳이 없네.정말 여긴 좋다.조용하고."

친구들의 수다가 뒤통수를 근지럽힌다.

 

 

 

모두들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하고 떠나온지라 아침을 걸렀단다.난 먹었는데~

앉을 자리를 정리하고 싸 온 보따리를 풀고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만나지 못했던 동안의 안부를 묻고 지금의 생활과 가족들,서방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함께오지 못한 친구들의 근황도 묻고 대답하고 그러면서 우리도 참 오래 함께 다녔다.짤짤거리기 좋아하는 친구덕에 혼자서는 엄두도 못낼 여행도 많이 하게 되었으니 나더러 고맙단다. 치~~~말이좋네.

 

 

 

나: 야~니네들 너무하단 생각 안드니? 무려 20년 동안을 기사로 부려먹었으면 지금쯤은 무슨 인사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니네들 면허는 무슨 금태 둘렀냐? 모셔놓기만 하게.매번 여행길에 꼬박 혼자 운전을 해도 회비 면제해 주는 것은 고사하고 비용도 내가 더 썼으면 썼지 덜 쓴 적이 없네.자동차에 있는 과자랑 음료수랑 육포  너네들이 다 먹고 한번이라도 사다 준 적이 있냐고~ 하긴 여행 갔다오면서 자동차에 있는 쓰레기 한 번을 치워준 적이 없으니 말해 뭐하냐.이그~ 말이 났으니 내가 오늘 이야기한다.

 

친구1 : 야~ 그래도 회비 한 번은 면제해 준 적있다.

 

나 : 그래? 그래도 한 번은 회비 면제 받았네.20년 동안~ㅎ 

 

친구2 : 이 나이에 그런 염치없는 친구라도 있는게 좋지 만약 그런 친구라도 없다면  얼마나 불행햐냐?

 

하긴 맞는 말이다.어떤 상황에서건 나를 믿고 그렇게 기댄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는 또 얼마나 외로웠겠는가.5년 전까진 꽤 여러번 답사길에 동행을 했었다.답사를 몰라도,문화유산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까워도 내 답사여행길을 함께하며 불평 한번이 없었다.한곳에 앉아 귀떨어진 탑하나를 보며 두어시간을 앉아 있어도 빨리가잔 말이 없는 친구들이다.

 

 

 

 

 

 

주부 9단인 여인네 넷이 모였으니 솜씨들은 말 할 것도 없다.

정성껏 싸 온 도시락과 과일들을 펼쳐 놓으니

어떤 고급 레스토랑의 차림도 부럽지 않았다. 

알뜰하고 검소하게 꾸려온 그들의 살림솜씨가 보인다.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큰 바위위로 너댓의 청년들이 자리를 잡더니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물로 뛰어드는 소리가 어찌나 요란한지 청년들이 뛰어내릴 때마다

놀래고 또 놀래고.

"아니~ 그러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구~"

모두들 아들가진 엄마들이라 큰 소리로 걱정을 하는데도

청년들은 아랑곳 없었다.

"청년들~ 술먹은 건 아니지? 술먹고 물에 들어가면 절대 안돼요~"

 

 

아침에 흐리던 하늘이 몹시 변덕을 부렸다.

쨍하고 드는 햇볕에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기면 다시 빗방울이 후두둑대고 다시 바람이 불고 또 흐리고 다시 햇볕이 쏟아지고...

오후 세시가 넘으니 다시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댔다.빗방울의 굵기로보아 에지간히 퍼부어댈 기세다.

적당히,피곤하지 않게 계곡을 즐겼으니 이제 그만 일어나잔다.모처럼의 일탈에서도 집안걱정은 쉽사리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주부다.

 

  

 

 

 

 

 

 

계곡에서 고속도로진입로를 가는 중간에 들러본 곳.

신선암봉계곡에서 잠깐만 나오면 자동찻길에서 보인다.

몇 번이나 살펴 본 곳이지만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돌아보았다.

원풍리마애불상. 

 

많이 닳고 훼손되었지만 여름의 짙푸른 색감아래서는

그리 옹색하고 초라해뵈진 않는다.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 찻길에 즐비한 옥수수가게에 들렀다.친구들이 옥수수가 먹고 싶단다.

  

 

 

 

괴산은 옥수수가 유명한 곳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대학찰옥수수는 그 유명세가 대단하다.

이곳 출신의 대학교수가 몇 년간의 연구노력끝에 개발해 낸 품종이라는데 강원도의 찰옥수수맛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도 감탄할 정도로

괴산의 찰옥수수는 그 맛이 기막히다.

 

자동찻길에 즐비한 옥수수판매소에 들렀다.

이곳은 괴산에 근무하던 내 친구가 단골로 찾던 가게인데 그 친구덕분에 내 작은 까페의 회원들이 모조리 이 집에서 옥수수를 택배로 부탁했던 곳.

 

밭에서 막 따온 옥수수 스무개가 든 한자루가 15000원 이란다.

또 이곳에서 옥수수를 쪄서 급냉한 것도 판매한다고 했다.

냉동옥수수는 전자렌지에 살짝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다고 열심히 설명하는 주인장.연신 친구들에게 명함을 주며 선전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

"아저씨~ 외할머니가 떡장사를 해도 옆의 떡집보다 커야 사먹는다는 세상인데 그냥 맨입으로 광고를 해 줄 수 있나요? 찐 옥수수 작은 것이라도 한개 공짜로 줘야 광고를 해 줄 것 아닙니까" 친구의 너스레에 아저씨는 그냥 웃기만했다.

 

 

 

 

 

 

 

 

 

 

 

먹을 사람이 많지 않아서 나는 그냥 찐 옥수수 네개 묶인 한봉지만 사왔다.삼천원.

 

역시 맛은 훌륭하다.

집에서 쪄보면 왜 이맛이 나지 않을까...

 

 

 

 

 

 

 

 

 

여름 한나절.

맘 편한 친구들과 속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간 .

집 떠나는 여행은 당연 답사길이었던 내가 모처럼 빡빡함 던져버리고 느긋하게 여유를 가졌던 여름 한나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