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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당간지주(華嚴寺 幢竿支柱).전남 구례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구례 화엄사 당간지주(華嚴寺 幢竿支柱).전남 구례

푸른새벽* 2011. 4. 29. 16:30

 

 

 

 

 

 

 

 

 

 

 

 

 

 

 

 

 

 

 

 

 

 

 

 

 

 

 

 

 

 

 

 

 

 

 

 

 

 

 

 

 

 

 

 

 

 

 

 

 

 

 

 

 

 

 

 

 

 

 

 

 

 

 

 

 

 

 

 

 

 

 

 

 

 

 

 

 

 

 

 

 

 

 

 

 

 

 

 

 

 

 

 

 

 

 

 

 

 

 

 

 

 

 

 

 

 

 

 

 

 

 

 

 

 

 

 

 

화엄사 당간지주(華嚴寺 幢竿支柱)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화엄사 당간지주는 화엄사 진입공간을 지나 보제루 앞 정원에 동서로 마주 서 있다.화엄사는 당간지주의 배치로 보아 사역이 창건 시에는 지금보다 상당히 좁았던 것으로 추정되어 동서 오층석탑과 석등이 있는 곳이 중심 사역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는 기단부가 매몰되어 있어 구체적인 결구 수법은 알 수 없지만 상부를 갑석형(甲石形)으로 치석한 정연한 기단이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기단은 4매의 판석형 석재를 결구하였는데 상면에 사각형 홈을 마련하여 지주를 끼워 고정하였으며 면석부에는 안상을새겼다.안상은 전후면에 5구,양 측면에 각 3구씩 장식하였다.간대석은 두 지주 사이에 사각형 대석을 기단과 같은 높이로 결구하여 마련하였다.그리고 상부에는 높게 원좌(지름 31cm,높이 16cm)를 시공하여 당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두 지주는 동일한 양식으로 각 면을 고르게 다듬어 정교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지주부는 평면 사각 석주형으로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모습이다.그리고 지주 중간부분부터(지면에서 154cm) 외면 외곽 모서리를 깎아 각을 없앴다.지주 정상부는 전후로 호선(弧線)을 그리도록 둥글게 다듬었는데 이러한 마무리는 동화사 당간지주 등에서도 확인된다.지주 내면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간을 끼우는 간공과 간구를 시공하였다.동쪽 지주는 간공(지름 15cm)을 상하에 2곳 마련하였는데,원형으로 관통되지 않았다.반면 서쪽 지주에서 동쪽 지주 방향으로 간을 끼워 당간을 상하에서 고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간구는 두 지주 내면 꼭대기에 사각형으로 시공하였다.


이와 같이 당간지주는 소박하면서도 단아한 양식을 보이고 있다.간공의 시공 수법과 지주 상부 외면 모서리를 깎은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들과 닮아 있다.특히 지주부와 간대석의 치석 수법이 법수사지 당간지주와 강한 친연성을 보인다.


한편 화엄사는 늦어도 경덕왕대(742~765)에 창건되었거나 중창되어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대찰의 면모를 유지하였다.특히 경내에 있는 화엄사사자탑 삼층석탑,석등,감로탑,동.서오층석탑 등은 통일신라 중기에서 말기에 걸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대화엄사사적(大華嚴寺事蹟)』에는 화엄사 가람을 설명하면서 통일신라로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화엄사는 광대한 규모의 사찰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여기에 '~石幢子一座 大石槽一座 蓮池二所~'라고 하여 화엄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배치된 석조물들을 나열하고 있다.그런데 당간지주가 앞쪽에 기록되어 있어 화엄사 입구에 위치하고 서있었음을 알 수 있다.이와 같이 화엄사 당간지주는 지주의 양식과 화엄사의 연혁 등으로 보아 석등이나 동.서 오층석탑 등과 비슷한 시기인 통일신라 말기 9세기대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