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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지당간지주(彌勒寺址幢竿支柱).전북 익산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익산 미륵사지당간지주(彌勒寺址幢竿支柱).전북 익산

푸른새벽* 2014. 3. 27. 12:30

 

 









 





 

 









 





 





 

 





 





 





 





 





 





 





 





 









 

 









 

 









 

 





 









 

 





 





 









 





 

 





 





 





 

 익산 미륵사지당간지주(彌勒寺址幢竿支柱)


미륵사지 뒤편으로는 용화산(龍華山) 줄기가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남쪽은 넓은 들이 있다.미륵사지는 1910년 일본인에 의해 탑과 가람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시작되었다.이후 1980년대에 들어와 본격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지금도 미륵사지 해체 공사가 진행 중이다.발굴 전 미륵사지 지상에 노출되어 있던 석탑과 당간지주가 미륵사의 연혁을 전하고 있었다.미륵사는 백제 무왕대(600~641)에 창건된 사찰이었다.수년간에 걸친 발굴 조사 결과 가장 빠른 유구와 유물들이 백제 후기인 사비시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또한 미륵사 가람의 형성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고려말기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간지주는 남회랑지 남쪽 편에 2기가 89m 간격을 두고 동서로 대칭을 이루며 서 있는데,두 당간지주가 동일한 수법으로 치석되었다.특히 대부분의 사찰이 1기(基)의 당간지주만을 세우는데 비하여 2기의 당간지주를 동서로 배치함으로써 미륵사가 대찰이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중에서 서편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형식과 양식을 살펴보고자 한다.서편 지주는 탑으로부터 64m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지대석은 판석형(板石形)석재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기단을 마련하였는데,지대석과 기단이 부분적으로 파손되어 있지만 정연한 수법을 보이고 있다.기단은 2매의 긴 사각형 돌을 결구하였는데,면석부가 있고 상부는 갑석형(甲石形)으로 마련되었다.면석부에는 앞뒤가 각 3구씩,양 측면은 각 2구씩 안상을 음조(陰彫)로 조식(彫飾)하였다.안상은 상단부의 첨형 무늬가 가운데 꼭지점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으며,부드럽게 굴곡을 이루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안상 조식 수법을 보이고 있다.기단 상면에는 각호각형(角弧角形)의 괴임을 마련하여 두 지주와 간대석을 받치도록 하였다.이러한 기단 조성 수법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하층기단과 동일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간대석은(46.5x68cm,높이 21.8cm)은 사각형 대석을 기단 상면에 돌출되도록 마련하였다.간대석 하부는 간대받침을 마련하였는데,상부 석재는 돌출시키고 하부 석재는 홈을 시공하여 두 부재가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하였다.전후면은 3단으로 구분하고 연꽃잎을 표현하려는 듯 세로로 5번 굴곡을 주어 장식적인 의장을 보이고 있다.간대석 상면에는 원좌는 없지만 원공(지름 18cm)을 시공하여 당간을 받치도록 하였다.특히 간대석 상면에 당간을 세웠던 흔적이 약하게 남아 있는데,그 평면이 부동변 팔각형임을 알 수 있다.이것은 원래 당간의 평면이 부등변 팔각형인 석당간이 세워졌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그러나 출토된 석당간의 평면은 정팔각형으로 일치되지 않고 있다.따라서 파손된 채로 남아있는 석당간이 후대에 보강되었거나 하단부 석당간은 평면이 부등변 팔각형으로 마련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두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있는데,기단부 상면에 사각형 홈을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다.지주 내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으나,전후면과 외면 외곽에는 윤곽대(너비 12cm)를 돌렸으며,각 모서리는 둥글게 깎아 부드러운 인상을 주도록 하였다.또한 외면 중앙에는 반원형(半圓形)세로띠를 높게 양각하였는데,상단부까지 연결되고 있다.지주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호선을 그리도록 하였으며,그 가운데에 1단의 굴곡을 깊게 주어 장식적인 의장을 보이고 있다.이와 같이 지주부는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세련된 인상을 주고 있으며,지주 굵기도 전체 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얇아 경쾌한 인상이다.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간(杆)은 지주 내면에 2개의 간공을 시공하였으며,꼭대기에'Ц'형으로 간구를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다.아래에 있는 간공 중 서쪽 편의 간공은 사각형으로 시공하면서 상부를 경사지게 깎아 간을 원활하게 끼울 수 있도록 고안하였다.이러한 간공의 예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세워지는 당간지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치석 수법으로 당간을 원활하게 세우기 위한 건축술이다.이것은 당간과 당간지주의 건립 공정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그러나 미륵사지 동편 당간지주는 이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고 사각형의 간공을 상하에 시공하였다.


그리고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당간을 세웠던 일부 석조 부재편들이 남아있어 당간의 재질과 원형을 추정할 수 있다.현재 당간에 활용되었던 7편의 석재가 남아있다.발굴 초기에 6편이 출토되었고,이후 발굴을 진행하면서 1편이 동편 당간지주 기단 옆에서 발견되었다.석당간은 평면이 정팔각형으로 당간 하부의 것은 굵고 상부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도록 하여 어려 매의 부재를 연결하여 올렸음을 알 수 있다.이들을 복원하여 연결하면 당간의 높이는 적어도 11m이상이라고 한다.미륵사지 석당간은 담양 읍내리.나주 동문외.부안 서외리 석당간처럼 여러 매의 당간석을 연결하여 세웠는데,1매의 당간 길이가 다른 석당간들에 비하여 상당히 짧았음을 알 수 있다.석당간의 연결은 상하부를 각각 반절로 절단하여 상하부 연접부분에 구멍을 관통시켜 철로 된 간을 끼우고,철띠로 묶어 견고하게 고정하였던 것으로 짐작된다.특히 동편 당간지주 기단부 옆에서 출토된 당간석은 위로 갈수록 좁아지면서 팔각의 형태가 사라지고 원형에 가깝게 변하고 있어 정상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이것은 석당간의 상부에 당을 걸고 오르내릴 수 있는 장식물을 달아 마무리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이와 같이 미륵사지 석당간은 통일신라시대에도 당간을 나무나 철 이외에 내구성이 강한 돌을 활용하여 당간을 건립하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는 것에서 주목된다.


현재 미륵사지에 남아있는 2기의 당간지주는 동일한 형태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동시기에 건립된 것이다.동편 당간지주에 대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는데,석당간의 상부로 보이는 팔각형석이 출토되었다.그리고 동서편 당간지주의 하부 토층을 발굴한 결과 당간지주는 창건 시에 건립된 것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동편 당간지주의 하부에서는 층위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당간지주를 세우기 위하여 되파기한 흔적이 확인되었다.그리고 서편 당간지주의 하부에서는 40~60cm까지 부식토층을 이루면서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와편이 포함되어 있었으며,이 층위 아래로는 모래층이 일정한 층을 이루면서 아래로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또한 사찰 창건 당시 매몰토 위에서 백제시대 기와편이 포함되어 있어 당간지주는 부토(浮土)위에 세워진 것으로 조사되었다.따라서 두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특히 서편 당간지주 하부 층위에서 통일신라 초기로 추정되는 기와가 7편 출토됨에 따라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기단을 정연하게 마련하였다.즉,통일신라시대 석탑의 기단부 수법을 모방하여 마련하였음을 알 수 있다.당간지주에서 이러한 기단은 주로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고려 전기까지 활용되었다.면석부에는 안상을 장식하였는데,안상이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그 외곽선이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있다.또한 지주부는 내면을 제외하고 외곽에 일정한 너비로 윤곽대를 돌린 점,외면 중앙에 세로띠를 추가적으로 장식한 점,지주부 정상부가 내면에서 외면 쪽으로 나가면서 호선을 형성하고,그 중간에 1단 굴곡을 둔 점 등은 통일신라 중기와 말기에 건립된 당간지주들의 전형적인 치석 수법이다.이러한 예는 부석사.구룡사지.고령 지산동.숙수사지 당간지주 등에서 볼 수 있다.그리고 지주 내면에 간구와 간공의 시공 수법도 통일신라시대 수법을 보이고 있다.즉,간구를 마련하고 그 아래에 간공을 1@개 정도로 시공하는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에 일반적으로 활용된 수법이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미륵사지 당간지주는 9세기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익산 미륵사지당간지주(彌勒寺址幢竿支柱)

보물 제236호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79-93 


미륵사지당간지주는 미륵사터의 남쪽 2기의 지주가 약 90여 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데, 크기와 양식, 조성수법이 같아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지주를 받치는 기단부(基壇部)는 완전히 파괴되어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는 상태이며, 약간만이 드러나서 그 원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지주는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마주보는 면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바깥쪽 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띠를 돌린 후, 그 중앙에 한 줄의 띠를 새겨두었다. 당간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기 위해 지주의 안쪽 면에 3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놓았는데, 맨 위의 것만 직사각형 모양이고 나머지는 둥글다.


대체적으로 장식이 적으며, 단정한 형태를 보이는 이 두 지주는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곳의 당간지주와 거의 같은 모양의 예로는 경북 영주시의 숙수사지당간지주(보물 제59호)와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등이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