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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實相寺證覺大師凝蓼塔碑).전북 남원 본문

☆~ 풍경소리/전 북

남원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實相寺證覺大師凝蓼塔碑).전북 남원

푸른새벽* 2011. 5. 24. 11:07

 

 

 

 

 

 

 

 

 

 

 

 

실상사 증각대사부도비(實相寺證覺大師浮屠碑)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 위에 바로 이수만이 얹혀 있다.오랜 풍화작용에 의해 마멸이 심하지만,남아 있는 상태로만 보아도 조각수법에 있어 긴장감이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수는 높이가 1.03m,귀부 너비가 1.61m에 이른다.귀부의 세부 조각을 판별하기는 힘들지만,자세히 살펴보면 귀갑문이 얹혀 있고
네 다리와 머리가 말쑥하며,거북 등 중앙에는 비신을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당대에 일반화된 용머리 형상이 아니라 거북 머리 그대로를 충실히 따랐다.


이수의 모습도 신라 초기의 대표적인 작품인 태종무열왕릉비와 비슷하다.이수 앞면에는 오각형 평면이 구분되어 그 앞에 응료탑비(凝廖塔碑)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밑 둘레에는 구름과 용머리 무늬가 있다.


건립년대는 부도와 동일한 9세기 후반으로 보아야 할 것이지만증각대사 부도에 견주어 볼 때 매우 퇴락해 있고,조각수법도 훨씬 이전의 것으로 보인다.보물 제39호로 지정돼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비(實相寺證覺大師凝蓼塔碑)


보물 제39호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실상사 


실상사에 있는 증각대사의 탑비이다.


증각대사는 일명 홍척국사 ·남한조사로 불리며, 통일신라 헌강왕 때에 당나라에 들어갔다가 흥덕왕 1년(826)에 귀국한 뒤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사파를 일으켜 세운 고승이다.


비는 비몸돌이 없어진 채 현재 거북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있다. 받침돌은 용의 머리를 형상화 하지않고 거북의 머리를 그대로 충실히 따랐다. 머릿돌은 경주의 ‘태종무열왕릉비’계열에 속하는 우수한 조각을 보여주는데, 앞면 중앙에 ‘응료탑비(凝蓼塔碑)’라는 비명칭을 새겨 두었다.


9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의 신라 무열왕릉비와 같이 한국 석비의 고전적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다. 대사의 묘탑인 실상사증각대사응료탑(보물 제38호)은 탑비의 뒤편 언덕에 세워져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