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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성주 법수사지당간지주(星州法水寺址幢竿支柱).경북 성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성주 법수사지당간지주(星州法水寺址幢竿支柱).경북 성주

푸른새벽* 2015. 9. 16. 16:26

 

 

 

 

 

 

 

 

 

 

 

 

 

 

 

 

 

 

 

 

 

 

 

 

 

 

 

 

 

 

 

 

 

 

 

 

 

 

 

 

 

 

 

 

 

 

 

성주 법수사지당간지주(星州法水寺址幢竿支柱)


성주사지 삼층석탑 앞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면 계단처럼 푼 논 사이로 가지를 풍성히 뻗은 당산나무가 보인다.당간지주는 이 나무와 친구처럼 또는 형제처럼 함께 서 있다. 처음 찾아가 이 위치를 물으면 동네사람들은 " 아,그 장군젓가락 말이지요 " 하면서 길을 일러준다.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고 웃음을 감추며 그 소박한 상상력을 재미있어 하다가도, 그 속에 어쩌면 이만한 젓가락을 마음대로 사용하는,사바세계를 막음하고 새 세상을 열어준다는 미륵불 같은 그런 장군의 도래를 대망하는 꿈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만 아득해진다.


당간지주로서는 썩 큰 편이 아닌 3.7m의 키에 특별한 장식 업이 소박한 자태다.옆에서 보면 꽤 빠르게 폭이 좁아지는데 허리에서 한 번,목에서 또 한 번 안쪽을 제외한 3면에 낮게 턱을 지워 단조로움을 피하면서 상승하다가 끝을 부드럽게 공글려 마무리했다.안쪽에는 꼭대기에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구를 두었을 뿐 아무 장식 없이 표면을 거칠거칠하게 마감했다.두 지주 사이에는 당간을 올려 세웠던 간대가 가운데 둥근 구멍을 처음 모습대로 지닌 채 밑동에서 자른 원추형으로 박혀 있다. 그 앞에는 다른 데서 옮겨온 듯한 배례석이 당산나무 둥치에 파먹히며 놓여 있다.가운데 연꽃 무늬와 그 둘레를 두른 당초무늬가 조각되었지만 솜씨는 거칠다.


당산지주와 당산나무가 어우러지는 모습이 좋다.나이야 당간지주가 한참 더 먹었겠지만 지금은 당산나무가 노성한 모습으로 가지를 드리워 햇빛과 바람을 막아주며 함께 늙어가는 게 보기 좋다.모심기한 벼포기가 파랗게 논을 덮어가고 느티나무의 잎들이 새로 돋아 하늘을 반쯤 가릴 만큼 짙어졌을 무렵이면 당간지주와 당산나무가 어울리는 풍경은 잘 찍은 사진이 된다.


당간지주가 법수사터에 남아 있지만 반드시 절이 처음 들어설 때 세웠다는 증거는 없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성주 법수사지당간지주(星州法水寺址幢竿支柱)


시도유형문화재 제87호(성주군)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316 


이 당간지주는 신라(新羅) 애장왕(哀莊王)(800∼809) 때 창건한 법수사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이나 사찰 창건 때 같이 세워진 것인가는 의문이다. 현재는 높이 3.7m이며 장방형의 석주 2개가 상대하여 서 있고 지주 밑에는 간(竿)을 받치기 위한 지대석이 원추형이 되어 남아 있다. 특히 지주 주변에는 배례석까지 있는데 이는 뒤에 옮겨온 것이 아닌가 한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간결 단아한 지주로 당간지주 계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문화재청자료*

 

 

성주 법수사지 당간지주(法水寺址 幢竿支柱)

 

법수사는 전체적으로 가람이 경사진 구릉에 위치한 사찰이었다.금당지는 높게 석축을 쌓아 평평하게 한 후 삼층석탑 등을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는데 현재 불상과 석등의 대좌,초석 등이 흩어져 있다.


두 지주는 마을 앞 논 가운데 있는 큰 나무 아래에 동서로 마주 서있다.기단은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며,간대석이 두 지주 사이에 마련되었다.간대석은 사각형 대석으로 상면에 이중의 원좌를 마련하고 그 가운데에 깊게 원공(지름 20cm,깊이 8cm)을 시공하였다.원좌 1단 둘레에는 연화문을 조식하였다.이러한 원좌 원공 시공 수법은 당간을 견고하게 고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철당간이나 목당간을 세웠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주부는 각 면을 정교하게 다듬었다.지주 외면의 외곽 모서리는 각을 깎았으며,내면을 제외하고 나머지 면은 하단부에서 일정한 높이까지 1단 높게 치석하고 다시 상단부로 올라가 1단 낮게 하였다.1단 높게 깎은 부위에는 세로로 1조의 음각선을 두어 구분하였다.이와 같이 지주부는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는 형태를 취하도록 하였으며 2곳에 단을 두어 단조로움을 피하였다.정상부는 평평하다가 외면과 만나는 부위에서 호형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다.당간을 고정시키는 간은 내면 꼭대기에 큰 간구를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다.


법수사 당간지주는 전체적인 치석 수법이 정연한 인상을 주고 있다.또한 지주부는 2번의 단을 두어 장식성을 가하고 있으며,각 면을 고르게 다듬었다 .이러한 치석 수법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경주 지역의 사처왕사지나 남간사지 당간지주 등과 친연성을 보인다.특히 법수사지에 남아있는 삼층석탑과 석불 등은 법수사가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추면서 당간지주 등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당간지주는 그 치석 수법과 사찰의 연혁으로 보아 9세기 전반경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법수사지 당간지주는 시도유형문화재 제87호이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