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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현동당간지주(英陽 縣洞幢竿支柱).경북 영양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영양 현동당간지주(英陽 縣洞幢竿支柱).경북 영양

푸른새벽* 2016. 12. 7. 21:56



































































































영양 현동당간지주(英陽縣洞幢竿支柱)


이 일대에는 사찰의 흔적으로 보이는 많은 석조물들이 산재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절 이름이나 연혁은 알 수 없다.현재 삼층석탑(보물 601호)과 초석 등이 있고,논에서는 많은 기와 조각이 출토되고 있다.당간지주 소속 사찰은 입지 조건이 평지이며,주요 교통로 상에 위치하고 있어 주목된다.


당간지주는 논 가운데 축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현재는 동쪽 1주만 남아 있으며 삼층석탑과는 50m정도 떨어져 있다.따라서 당간지주가 서있는 부분이 사찰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이고,삼층석탑이 서있는 지역이 중심공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가람의 중심 축선이 동서로 이어지고,그 좌우에 다수의 건물들이 배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매몰되어 알 수 없으며,간대석은 상부가 노출되어 있다.간대석은 사각형 대석으로 좌우에 'ㄷ'자형의 홈을 파고 지주를 끼워 세웠으며,상면에 이중의 원좌(지름 80cm,61cm)와 그 가운데에 원공(지름 37cm,깊이 24cm)을 시공하였다.간대석의 시공 수법으로 보아 당간은 목당간이나 철당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지주는 외면만 외곽 모서리(너비 5~6cm)를 모나지 않게 깎아 다듬고,가운데에 일정한 높이의 낮은 세로띠를 장식하였다.지주 외면은 마치 'T'자형 문양이 장식된 것처럼 일정한 너비의 돋을대를 장식하였다.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유려한 호선을 형성하고 있으며,외면과 만나는 부분에서 1단 낮게 굴곡을 두어 치석하였다.지주 내면 꼭대기에는 당간을 고정하는 간구(19x8cm,깊이 11cm)를 상하로 길쭉하게 시공하여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간대석과 지주는 각 면을 고르게 다듬어 정교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그런데 지주부의 너비와 폭이 지주 전체의 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서 전체적인 외관은 둔중하다.당간지주는 같은 사찰의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동일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인근의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화천동 삼층석탑,연당동 석조약사불(889) 등 다수의 불교미술품이 남아있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많은 사찰들이 창건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영양 현동 당간지주와 삼층석탑도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중후반경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영양 현동당간지주(英陽縣洞幢竿支柱)


문화재자료 제85호(영양군)
경북 영양군 영양읍 현리 404


절 이름과 연혁이 전하지 않은 채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의 한쪽만이 남아 있다.


당간은 당을 달아 두는 장대이고, 지주는 장대를 지탱하도록 하기 위해 당간의 좌우에 세워 둔 기둥이다. 사찰에서의 당은 사찰입구에 꽂은 기당(旗幢)의 일종으로서 기도나 법회등의 의식이 있을 때 당간에 달게 된다.


이 곳 당간지주의 양식은 위에서 아래로 굵어지는 네모꼴의 화강석 돌기둥으로, 기둥 바깥면의 중앙에 굵은 종선문(縱線文)을 새겨 장식했고 정상부는 일단의 굴절을 갖는 호면(狐面)으로 다듬은 모양이며 안쪽 면의 정상에는 간구(竿溝)를 깊게 파 두었다. 또 당간지주의 뿌리 안쪽 면에 붙여서 별도의 돌로 다듬은 간대(竿臺)가 남아있다. 간대는 상면에 원형의 주좌(柱座)를 조각해 두었다.


조각의 장식이 별로 없으나 굵고 묵직한 형태는 소박하면서 안정감을 주는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