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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사지 당간지주(法泉寺址 幢竿支柱).강원 원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원주 법천사지 당간지주(法泉寺址 幢竿支柱).강원 원주

푸른새벽* 2016. 10. 9. 18:43







































원주 법천사지 당간지주(法泉寺址 幢竿支柱)


법천사지 당간지주는 경작지 높은 축대 위에 동서로 세워져 있다.당간지주가 서 있는 지점이 원래는 법천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였을 것이다.기단부는 매몰 또는 결실되어 확인할 수 없으며,간대석이 두 지주 사이에 마련되었다.지주 하부의 치석 수법이 조잡한 것으로 보아 정연한 기단은 시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간대석은 치석 수법이 정교하지는 못하지만 원형에 가까운 팔각형으로 독특하게 마련되었다.아직도 정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원좌나 원공은 마련하지 않고 상면 중앙에 원형의 돌출 부위(지름 35cm,높이 9cm)를 시공하여 당간 하부를 받치도록 하였다.이러한 수법은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 등에서도 볼 수 있는 간대석 수법이다


두 지주는 별다른 조식은 없으며, 외면 외곽 모서리도 깎지 않았다.따라서 전체적으로 평면 사각형의 높은 석주를 세워놓은 듯하다.지주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평형하다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도록 하였다.당간을 고정하는 간은 내면 꼭대기에 ∪자형의 작은 간구를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으며 간공은 시공하지 않았다.간구는 지주 규모에 비하여 작게 마련되었으며,간공을 시공하지 않은 점 등은 고려시대의 수법을 보인다.


법천사지 당간지주는 전체적으로 각 면의 치석 수법이 정교하지 못하고 지주의 너비와 폭이 전체 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커서 둔중한 인상을 준다.또한 외면 모서리를 깎지 않고 직각으로 치석하여 강인한 인상을 주고 있다.그리고 간구는 지주 규모에 비하여 작은 편이다.이러한 치석 수법은 강릉 대창리.강릉 수문리.춘천 근화동.홍천 희망리 당간지주 등  주로 강원도 지방에서 통일신라 말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건립된 당간지주에서 많이 볼 수 있다.특히 법천사는 고려 초기에 사역이 확장되고 남한강 수로를 통한 교역이 확대되면서 흥법사,거돈사 등 인근에 소재한 다른 사찰들과 함께 원(院)의 기능도 수행하였을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법천사는 고려 초기에 들어와 사역이 확장되면서 중창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이러한 점으로 보아 법천사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의 치석 수법을 계승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당간지주의 양식도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법천사당간지주(法泉寺幢竿支柱)


문화재자료 제20호(원주시)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620 


이 당간지주는 법천사 절터에 남아 있는 것으로,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제59호)와 함께 터를 지키고 있다. 기둥에는 별다른 조각이 없으며,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있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을 꽂아두기 위한 받침돌을 둥글게 다듬어 마련해 놓았다. 두 기둥의 윗부분은 모서리를 깍아 둥글게 다듬어 놓았고, 안쪽면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파놓았다.


당간의 받침돌이 본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작품으로, 기둥 형태가 안정감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측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