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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청송사지부도(靑松寺址浮屠).울산광역시 본문

☆~ 풍경소리/울산광역시

울주 청송사지부도(靑松寺址浮屠).울산광역시

푸른새벽* 2016. 2. 7. 00:12

 

 

 

 

 

 

 

 

 

 

 

 

 

 

 

 

 

 

 

 

 

 

 

 

 

 

 

 

 

 

 

 

 

 

 

 

 

 

 

 

 

 

 

 

 

 

 

 

 

 

 

 

 

 

 

 

 

 

 

 

 

 

 

 

 

 

 

 

 

 

 

 

 

 

 

 

 

 

 

 

 

 

 

 

 

 

 

 

 

 

 

 

 

 

 

 

 

 


울산 청송사지부도(靑松寺址浮屠) 

 

청송사지 삼층석탑에서 마을길을 조금 내려와 오른쪽으로 청송사터 부도 표지판을 보고 밭을 가로질러 산길을 약간만 오르면,석종형 부도 3기와 각종 석재들을 한데 모아놓은 부도밭이 나온다.짧은 산길이지만 융단처럼 깔린 솔잎을 밟고 오르는 느낌이 상쾌하다.깔끔한 도회지의 남성 같은 느낌이 드는 삼층석탑과는 달리 부도밭에는 크고 장식하기를 좋아하는 소박한 취향을 감추지 않은 시골 아낙네 같은 부도들이 있다.시대의 간격이 있긴 하지만 같은 청송사 '제'(製)가 맞을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로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이 부도밭에 있는 부도는 크기가 다른 세 기의 부도이다.부도들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 것이 가장 크고,그와 닮은꼴인 가운데가 신흡대사의 부도이다.오른쪽 것이 가장 작고 단순한 모양이 석종형 부도이다.


왼쪽 부도의 모습을 아래에서부터 차례대로 살펴보면,우선 높직한 방형의 기단석 위에 석종형 몸돌을 받치기 위한 연꽃받침을 놓았는데,이 연꽃받침은 복련석과 앙련석 두 돌로 되어 있다.높직한 기단면석 앞면과 뒷면에는 각각 무언가를 쥐고 위협하는 듯,춤을 추는 듯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린 신장상이 하나씩 조각돼 있고,좌우 옆면에는 큼직한 꽃 한송이씩이 조각돼 있다.각 면에 귀기둥도 조각돼 있다.앙련과 복련의 꽃잎을 표현한 솜씨는 다소 거칠고 선이나 조형이 간략화되어 있지만,앙련석 윗면에도 꽃 모양을 새긴 것을 보면 장식적 취향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 수 있다.단면이 원형인 석종형의 몸돌 아랫부분에는 범어를 돌려 새겨넣었으며,어깨 부분에도 삼산형(三山形) 꽃잎 모양을 큼지막하게 돌려 새겼다.꼭대기에는 보주를 돌출시켰다.그러나 각 부재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어색한 것이 모두 제짝인지 의심스럽다.


가운데 신흡대사의 부도는 왼쪽의 부도보다 크기가 약간 축소되고,각 부재에 조각된 장식의 종류와 기법이 조금 다를 뿐 분위기는 거의 같다.기단부 면석 각 면에 꽃송이가 네 개씩 조각되었고,몸돌을 받치기 위한 앙련석과 복련석의 조각이 오십보백보이긴 하나 조금 더 신중해진 것,그리고 석종형 몸돌의 아랫부분이 범어가 아닌 당초문으로 장식된 점 등의 차이가 난다.또 어깨 부분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점,몸돌 정면 가운데에 '瑞應堂 愼恰大師'(서응당 신흡대사)라는 명문이 있는 점도 왼쪽 부도와 구별되는 점이다.신흡대사는 청송사를 크게 일으켰거나 혹은 덕망이 높았던 스님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른쪽 석종형 부도는 기단이나 받침대 없이 몸돌만 남은 조그만 부도인데,표면이 각형이다.세 부도 이외에도 부도밭에는 사리공이 분명한 부도의 일부 부재,꽃무늬가 조각된 석재,비석받침 등이 여럿 있다.이렇게 세 부다가 수습된 것은 1982년의 일이다.부도밭에 서면 지금은 비록 이름 정도가 겨우 전하는 절이지만,조선시대의 어느 한 시기 청송사가 크게 이름을 떨쳤던 것을 잊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이 들리는 듯하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엮음'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울산 청송사지부도(靑松寺址浮屠)


시도유형문화재 제3호(울주군)
울산 울주군 청량면 율리 산107-4 


이 부도들은 청송사터에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남아 있으며, 모두 3기에 이른다. 서로 크기만 다를 뿐 거의 같은 양식을 하고 있어서, 높직한 받침 위로 2단의 기단(基壇)을 두고 종모양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받침에는 연꽃무늬와 신장상(神將像)을 새겼으며, 2개의 돌로 이루어진 기단은 연꽃을 위아래로 대칭되게 조각하여 장식하였다. 탑신은 아래에 고사리 무늬를 새겨놓았다. 3기 중 1기의 탑에는 탑신에 ‘서응당진흡대사(瑞應堂眞洽大師)’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꼭대기에는 꽃봉오리모양의 머리장식이 큼직하게 돌출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작품들로서, 청송사의 덕망높은 승려들의 사리를 모셔놓은 곳이라고도 한다. 3기중 1기는 그동안 넘어져 있던 것을, 1982년에 복원해 놓은 것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