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榮州三街洞石造幢竿支柱).경북 영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榮州三街洞石造幢竿支柱).경북 영주

푸른새벽* 2017. 4. 18. 21:16










































































영주 비로사 당간지주(毘盧寺 幢竿支柱)


비로사는 의상(625~702)이 신문왕 3년(683)에 개창하여 그의 제자였던 진정(眞定)이 대가람의 면모를 갖춘 화엄종 사찰이었다.통일신라 말기에는 소백산사(小白山寺)라고 불리었으며 수차례 소실과 중창을 거듭하였다.현재 비로사를 중심한 일대에서 초석과 기와 편들이 넓게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당간지주는 비로사 경내로 들어가는 진입 공간 좌측 경작지에 남북으로 세워져 있다.지주의 기단과 간대석은 결실되었는데,두 지주 하단부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원래는 정연한 기단이 마련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전후면 외곽에는 높은 돋을새김으로 윤곽대를 돌리고,그 중심에 좁은 세로띠를 장식하였다.외면은 중앙에만 세로띠를 장식하고,지주의 중간부분을 1단 낮게 깎고 그 가운데에 다시 가로로 1조(條)의 돋을대를 새겼다.그래서 돋을대가 십자형 문양을 이루도록 하였다.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유려한 호선을 그리도록 치석하였고 그 가운데에 1단의 굴곡을 두었다.두 지주를 내면에서 접하면 마치 안상형 문양을 이루도록 지주부 외곽과 정상부를 치석하였고 장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주부는 전체적으로 화려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시공하였고,간공은 관통되지 않은 사각형으로 마련하였다


이와 같이 당간지주는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당간지주는 비로사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숙수사지나 부석사 당간지주들과 친연성을 보인다.그런데 비로사 당간지주는 이들에 비하여 지주부의 너비와 폭이 전체 높이와 잘 어울리고 있어 숙수사지나 부석사 당간지주가 주는 세장한 인상보다는 안정감이 있다.또한 숙수사지나 부석사 당간지주와는 달리 지주 내면에 간공과 간구를 시공하여 당간을 고정하도록 하였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비로사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비로사가 중건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시기는 8세기 중후반경으로 보인다.또한 경주 지역에 건립된 당간지주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 중에서*



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榮州三街洞石造幢竿支柱)


영주시 유형문화재 제7호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390 비로사경내


이 당간지주는 비로사로 올라가는 언덕 왼편의 높은 지대에 서 있다. 서로 마주보는 두 기둥의 안쪽면은 평평하며, 맨 위와 가운데에 각각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두었다. 바깥면은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일부에 넓게 면을 깎아두어 굴곡을 만들었고, 앞뒷면은 바깥둘레로 도드라지게 띠를 새겨 그 가운데에 세로선을 하나씩 더 두었다. 꼭대기는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2단의 굴곡을 주면서 둥글게 깎아 놓았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의 받침돌이 남아 있는데, 그 윗면에 당간을 꽂아두던 구멍이 뚫려 있다.


규모나 장식기법 등으로 보아 비로사의 창건시기와 비슷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주변의 밭에서 많은 기와조각들이 발견되고 있어 옛 비로사의 규모를 확인시켜주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