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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덕평리석조여래입상(論山德坪里石造如來立像).충남 논산 본문

☆~ 풍경소리/충 남

논산 덕평리석조여래입상(論山德坪里石造如來立像).충남 논산

푸른새벽* 2018. 12. 21. 18:50































































논산 덕평리석조여래입상(論山德坪里石造如來立像)


시도유형문화재 제55호(논산시) 
충남 논산시 부적면 덕평리 산4 


덕평리의 민가 인근에 세워져 있는 석불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의 앞에는 예불할 때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판석(板石) 3매가 함께 전해온다. 그중 2매에는 윗면에 연판문이 새겨져 있다. 또한, 단면 팔각형의 돌기둥도 남아 있는데, 석등 부재가 아닐까 한다.


석불의 불두(佛頭)는 신체에 비해 큰 비례를 보이며 전반적으로 달걀형의 동그란 윤곽을 지녔다. 육계는 아담한 크기의 반원형으로 솟아 있고, 얼굴은 파손이 심하여 이목구비의 일부만이 남아 있다. 그 흔적으로 보면 양감이 풍부하면서 선이 또렷한 얼굴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다. 귀 뒤쪽의 목과 어깨가 이어지는 부분을 마치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것처럼 묘사하였는데 이는 목의 구조적 취약점을 보강하려고 한 흔적으로 보인다. 귀 부분은 마멸이 심해 세부묘사가 잘 보이지 않는다. 통견(通肩)의 착의로 가슴의 명치 부분까지 노출시켰으나 인체의 양감을 별도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깨에서 ‘U’자형으로 흘러내리는 가사 깃은 탄력적으로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그 아래의 옷자락은 왼쪽 가슴에서 겨드랑이 쪽을 지나면서 선을 휘어지게 하여 가슴 부분의 양감을 강조하고 있다.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왼손은 여원인(與願印)을 결했을 것으로 보이나 역시 파손되어 정확한 모습을 파악하기 어렵다. 복부에서 ‘U’자형으로 내려오는 옷 주름은 허리를 지나면서 지그재그형태로 바뀐다. 이어 양쪽 다리에서 서로 나뉘어 흐르는데, 허벅지와 종아리 주변으로만 두 겹의 긴 타원형 옷 주름을 표현하였고 무릎뼈 부분을 은근히 들어내고 있어 하체의 육감을 강조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옷자락이 두 발로 각각 흘러내리는 방식을 우전왕상식(憂塡王像式) 착의법이라고 하는데, 이 석상의 경우처럼 종아리까지 옷 주름을 표현하지 않고 다리의 윤곽만을 드러내는 경우는 특이한 사례이다. 대신 허리 아래를 지그재그로 내려오던 옷 주름이 수직의 평행선을 이루며 두 다리 사이로 흘러내리고 있고, 양 손의 소매에서 흘러내린 옷자락은 양다리의 양쪽으로 흐르면서 불상을 양옆에서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발 아래까지 내려온 옷자락은 은행잎 형태의 옷 주름을 이루며 마무리되고 있는데, 발목 부분부터는 현재 땅속에 묻혀 있어서 상태를 확인할 수 없다. 불상의 뒷면은 별도의 조각 없이 평평하고 납작하게 다듬어져 있다. 이는 돌로 된 거신광배를 세우려는 조치로 보이는데, 광배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양감이 풍부하며 위풍당당한 석불입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다. 그러나 옷 주름이 다소 굵고 경직되어 보이는 점, 두 다리의 허벅지와 종아리 전체를 감싸는 특이한 옷 주름, 거대해 보이면서도 다소 둔중해 보이는 비례감, 약간 작아 보이는 손의 크기 등은 기존의 정형성에서 이탈한 모습이어서 다소 연대가 내려오는 고려시대의 불상이 아닐까 추측하게 한다. 개태사와 관촉사 석불의 그로테스크(grotesque)한 조각양식과 구분된다는 점에서 고려시대 충청남도 지역 불상 조각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