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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신용동오층석탑(光州廣域市 新龍洞五層石塔).광주광역시 본문

☆~ 풍경소리/광주광역시

광주 신용동오층석탑(光州廣域市 新龍洞五層石塔).광주광역시

푸른새벽* 2019. 3. 30. 20:15





























































































광주 신용동오층석탑(光州廣域市 新龍洞五層石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
광주 광산구 신룡동  57-1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에서 낙암산(樂菴山)쪽으로 약 300∼400m 떨어진 외딴 민가(民家) 옆에 우뚝 솟아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기단부(基壇部)의 중석(中石)과 지대(地臺)석 일부가 파손되고 상층기단의 면석(面石) 이매(二枚)가 결실된 상태였던 것을 1981년 9월 완전히 해체 복원하였다. 이 때 1층탑신 상면 중앙의 사이공(舍利孔)에서 사각방형(四角方形)의 금동사이함(金銅舍利函)과 사이병(舍利甁), 그리고 몇 조각의 목편(木片) ,죽편(竹片) 등의 사이구(舍利具)가 발견되었다. 사이구(舍利具)는 국립광주박물관(國立光州 博物館)에서 보존(保存)하고 있다.


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보면 기단부(基壇部)는 이중기단(二重基團)이며 지대석(地臺石)은 4개의 석재(石材)를 결구(結構)하여 하대석(下臺石)을 겸했고, 4면에 귀기둥(隅柱)과 버팀기둥(탱주撑柱)을 각출(刻出)하여 일면(一面)을 이구(二區)로 구분하였다. 그 위로 하대갑석(下臺甲石)을 얹었는데 하대갑석(下臺甲石)은 2매의 판석(板石)으로 짰으며 갑석 윗면은 경미한 경사를 나타내고 1단의 각형괴임을 표현하였다. 상층기단은 4매의 면석과 갑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면석(面石)의 4면에는 역시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표출되어 있고 한 장으로 된 갑석(甲石)은 아래 쪽에는 부연(副椽), 위 쪽 중앙(中央)에는 1단 괴임을 만들어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각층마다 옥개석(屋蓋石)과 탑신(塔身)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만들어 졌는데 1층 탑신은 특별한 조식(彫飾)이 없이 4면의 양쪽 모서리에 귀기둥을 나타냈다. 옥개석 상면의 우동(隅棟)은 뚜렷하고 추녀를 내려와서는 완연하게 되바라졌으며 층급받침은 4단이다. 이처럼 1층부터 3층까지 4단이던 층급받침은 4∼5층에서는 더욱 간화되어 3단으로 줄어들었다. 탑신도 2층 탑신부터는 갑자기 높이가 짧아지면서 5층까지 알맞게 체감되어 5층탑이면서도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갖추어져 있으나 석질(石質)과 색감(色感)이 달라 후보(後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살펴보면 이중기단(二重基壇)으로 상하층 기단 각면에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있고, 각 옥개석 상면에 탑신을 받는 1단괴임이 있는 등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그 고준(高峻)한 형태와 간화된 층급받침 등으로 미루어 고려(高麗) 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구석구석자료*




광주 신용동오층석탑(光州廣域市 新龍洞五層石塔)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2호
광주 광산구 신룡동  57-1


외딴 민가 옆에 우뚝 솟아있는 석탑으로, 현재는 절이 있었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으나, 그 옆에 석불입상이 1구 있어 상당한 규모의 절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탑은 2층 기단(基壇)위로 5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의 몸돌은 2층에서 갑자기 높이가 낮아져 5층까지 알맞게 줄어들었으며,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은 4단씩이다가, 4∼5층은 3단으로 줄었다. 꼭대기에는 돌의 재질이 다른 장식들이 놓여 있는데, 나중에 보충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형식에 치우친 모습이어서, 고려 전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아래층 기단이 손상되고, 일부가 없어져 심하게 갈라진 위층 기단은 거의 무너질 정도였으나, 1981년 해체, 복원하였다. 탑 해체시 발견되었던 유물들은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