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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驪州 神勒寺 木造 阿彌陀如來三尊像).경기 여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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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驪州 神勒寺 木造 阿彌陀如來三尊像).경기 여주

푸른새벽* 2023. 10. 15. 12:55

 

 

 

 

 

 

 

 

 

 

 

 

여주 신륵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驪州 神勒寺 木造 阿彌陀如來三尊像)

 보물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천송동)

경기도 여주군 신륵사에 있는 조선시대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201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륵사 극락보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으로, 불상 내부에서 복장원문이 발견되어 1610년에 조각승 인일(仁日)과 수천(守天)에 의해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정확한 조성시기와 새로운 17세기 초 조각승의 발견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상이 서 있다. 이들 삼존상은 장방형 얼굴과 세장한 신체비례, 금엄하면서도 단정한 인상, 협시보살상의 각각 다른 착의 형식 등이 특징이다.

아미타여래좌상은 중품하생인을 하였으며 얼굴과 목이 길고 어깨와 무릎은 넓어 전체적으로 길쭉하면서도 비례가 안정적이고 자세는 당당하다. 머리에는 육계가 유난히 높게 올라가 독특하고 정수리에는 정상계주를 표현하였으며 큼직한 나발을 빼곡히 조각하였다. 긴 얼굴은 눈두덩이가 두터운 좌우가 긴 눈, 기다란 코, 작지만 도톰한 입술 등을 표현하여 근엄하고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특히 아랫눈꺼풀을 바깥 방향으로 굴곡지게 나타내거나 인중을 돌출되게 표현하고 입술 양 끝을 오목하게 패도록 조각하여 얼굴의 입체감을 더하였다. 곧고 긴 목에는 삼도를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착의법은 오른쪽 팔에 편삼을 두르고 그 위로 대의를 걸친 변형 통견식으로 목깃이나 옷주름 등이 두껍고 간결하며 두 다리 사이의 옷은 그 끝을 각지게 주름잡아 딱딱한 인상을 준다.

보살상들은 긴 신체비례나 얼굴 표현 등에서는 본존불상과 유사하지만 착의법이나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의 표현에서 차이를 보인다. 좌측의 관음보살상은 양 손을 배 부분에 두어 무언가를 쥐고 있었던 형상이며 어깨 위를 덮고 흘러 내린 천의는 팔목을 감아 길게 내려와 있다. 허리에서 무릎 아래에는 화려한 장식을 걸쳤으며, 무릎 부분에는 띠로 묶어 위아래를 볼록하게 표현하는 등 이례적인 표현을 보인다. 우측의 대세지보살상은 본존과 손모습이나 옷 주름의 표현에서 닮은 모습을 보이는데, 특히 변형 통견식 대의라든지 두터운 목깃 등이 유사하다. 전체적으로 간결한 옷 주름을 보이지만 주름에 변곡을 주어 입체적으로 처리하고자 하였다. 보살상의 머리카락 표현을 보면 관음은 어깨 위에 여러 가닥의 보발이 흘러내리지만 대세지보살은 생략하는 등 두 협시보살상의 표현에 차이를 둔 점도 특징이다. 장식은 두 보살상이 거의 같은데 귀에는 큰 화형 귀걸이를, 가슴에는 둥근 화형문에 구슬이 달려 있는 간결한 형태의 목걸이를 착용하였다.

좌상의 여래, 입상의 보살로 이루어진 삼존의 구성과 두 협시보살상의 착의법을 달리 표현하는 사례로는 1603년 안성 청룡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보물, 2012년 지정), 1620년 약수선원 목조보살입상 등이 있어 17세기 전반기의 특징이 반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주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1610년 백 여명이 넘는 승속인들이 발원한 불상으로 원 봉안처, 제작시기, 제작자가 명확하여 17세기 초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유난히 높은 육계, 이국적인 얼굴, 옷 주름 표현의 독창성 등 다른 불상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조형적 특징을 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불상을 만든 조각승 인일(仁日)은 이 불상을 통해 처음 소개된 조각승으로 주목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여주 신륵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驪州 神勒寺 木造 阿彌陀如來三尊像)

보물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천송동)

여주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보살상의 보관과 대좌가 후보(後補)된 것을 제외하곤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주존인 불상을 좌상으로 하고 협시상을 입상으로 한 구성은 고려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이다. 불상과 보살상들은 모두 상호와 상체가 긴 편인데, 특히 불상의 육계는 유난히 길게 조성되어 이색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불상의 큼직큼직한 나발과 단순하게 처리한 법의 자락은 조선초기부터 내려오던 특징이다.

불상의 눈언저리에 보이는 다크서클 같이 처리한 음영 기법이나 아래 입술을 도톰하게 만들어 처지게 표현한 것 등은 조각승 인일(仁日)과 수천(守天)의 조형 미감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다. 보살상들은 조성발원문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조선시대 1610년에 조성되었는데, 1620년의 약수선원 보살입상(현 동국대박물관 소장)과 전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이들 보살상 중 좌협시보살상은 천의식으로, 우협시보살상은 대의식으로 법의를 착용하고 있다. 한편 좌협시보살상의 양쪽 어깨 위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의 표현법과 하반신 중앙에 타원형을 그리며 드리워져 있는 화려한 장엄, 우협시보살상의 보발이 귀 밑에서 정리되는 표현법 등은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협시보살상의 보발 장식은 경기도 광주 수도사 보살상과 서울 보문사 관음보살상과 유사한데, 이들 보살상 역시 17세기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륵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은 조성자와 조성시기가 분명할 뿐만 아니라 인일이라는 새로운 조각승의 이름이 확인되어 향후 조선시대 불상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기준작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