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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도곡리석불좌상(驪州道谷里石佛坐像).경기 여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여주도곡리석불좌상(驪州道谷里石佛坐像).경기 여주

푸른새벽* 2023. 10. 22. 12:05

 

 

 

 

 

 

 

 

 

 

 

 

 

 

 

 

 

 

 

 

 

 

 

 

 

 

 

 

 

 

 

 

 

 

 

 

 

 

 

 

 

 

 

 


여주도곡리석불좌상(驪州道谷里石佛坐像) 

시도유형문화재 제160호(여주군)  
경기 여주시 금사면 도곡리 산7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도곡리에 있는 고려시대 불상.

1996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전체 크기 307㎝, 불상 크기 193㎝. 원적산(圓寂山) 자락에 있는 이 석불좌상은 팔각 대좌 위에 결가부좌의 자세로 앉아 있고 현재는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다. 머리칼은 나발(螺髮)이며 육계(肉)는 마모되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왼손은 엄지손가락을 손바닥 쪽으로 살짝 당겨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얹고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 대고 있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넓게 트인 대의(大衣) 안에 내의(內衣)를 입었다.

양팔에서 형성된 두터운 옷주름은 양 무릎으로 흘러내려 人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옷자락 일부는 그대로 흘러내려 양 무릎 위에 독특한 모양으로 표현되었다. 왼쪽 어깨 위에는 대의 자락을 고리로 고정시켜 삼각형 주름을 만들었다. 등 뒤에는 간략하게 대의(大衣)의 윤곽선만을 나타냈다.

상·중·하대로 구성된 대좌는 불상에 비하여 작은 편이다. 상대석의 앙련(仰蓮)은 8엽(葉)이고 그 사이에는 간엽(間葉)이 있다. 연꽃 안에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갖춘 불상이 조각되어 있다. 이와 같이 상대석 연꽃 안에 불상을 표현한 경우는 다른 불상 대좌에서는 그 예를 찾기 어렵다.

중대석은 8각형으로 여섯 면에는 안상(眼象)을 음각하고 그 안에 서 있는 신장상을 새겼다. 나머지 두 면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하대석에는 16개의 연꽃을 표현하였고 그 아래 8각형의 각 면에는 안상을 새겼다. 지대석은 현재 땅에 묻혀 있는데 세 조각으로 깨어졌다.

이 불상은 얼굴 모습이나 왼쪽 어깨의 삼각형 주름, 양팔의 계단식 옷주름, 상·중·하단을 갖춘 팔각 대좌 등으로 보아 9세기 조각 양식을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근처 여주 포초골 미륵좌불(경기도 유형문화재, 1973년 지정),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경기도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과 더불어 이 지역 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10세기 경에 제작된 봉림사지 석조여래좌상과 비슷한 수법을 보이고 있어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여주도곡리석불좌상(驪州道谷里石佛坐像) 

시도유형문화재 제160호(여주군)  
경기 여주시 금사면 도곡리 산7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원적산 산자락 밑에 북동쪽을 향하여 앉아 있는 석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팽팽한 두 뺨, 어깨까지 늘어진 귀 등에서 자연스러운 부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이 뚜렷하고, 손은 왼손을 다리 위에 얹었고 오른손은 가슴 부근에서 2개의 손가락을 펴고 있다. 

당당한 어깨를 감싼 옷은 양 팔에서 두터운 계단식 옷주름을 이루며 양 무릎에 흘러내린다. 왼쪽 어깨의 옷자락은 고리로 고정시켜 삼각형의 주름을 형성하였는데, 이런 표현은 9세기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을 계승한 것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상대·중대·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상대에는 연꽃받침이 새겨져 있는데 특이하게 연꽃잎마다 두 손의 엄지를 맞대고 있는 작은 부처를 새겼다. 6각 중대석의 4면에는 신장상이 배치되어 있고, 나머지 2면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 

전형적인 9세기 조각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근처에 있는 여주 포초골미륵좌상(경기도유형문화재 제35호), 여주 계신리마애여래입상(경기도유형문화재 제98호)과 더불어 이 지역 불상 조각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