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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불국사(吐含山 佛國寺).경북 경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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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불국사(吐含山 佛國寺).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6. 1. 15. 00:48

 

 





 









 





 

 





 





 





 









 

 





 





 





 





 









 





 





 

 





 





 









 

 





 





 









 





 

 





 









 





 





 





 

 








 




 


토함산 불국사(吐含山 佛國寺)

 

경북 경주시 진현동 15번지


불국사(佛國寺)는 신라 경덕왕(景德王.742~765)대인 751년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成)이 창건하기 시작하여 774년에 죽자,나라에서 이를 맡아 완공하였다고 『삼국유사』에 기록이 전한다.불국사와 석굴암(石窟庵)이 창건된 8세기는 신라의 국력과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로,
분황사 약사상(藥師像)이나 봉덕사 종(奉德寺鐘.성덕대왕신종)과 같은 위대한 예술품들을 창작하였다.불국사는 이 최고의 시기를 대표하는 건축이라 할 수 있는데 최고의 건축에 알맞게 윤회설을 바탕에 둔 김대성의 창건 전설부터 석가탑의 조각가 아사달 부부의 비극적 설화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연들이 얽혀 있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지장전(地藏殿)에 감추어진 무기를 발견한 왜군들이 불을 지르면서 극히 일부 건물을 제외한 2천여 칸의 건물들이 불타 버렸다.이후 1604년부터 한 세기 동안 차츰차츰 중건하여 1700년대에 비로소 가람의 형태를 갖추었다.근대기에는 1973년에 대대적인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는데 대웅전(大雄殿),극락전(極樂殿),자하문(紫霞門),안양문(安養門) 등을 중수하고 범영루(泛影樓),무설전(無說殿),비로전(毘盧殿),관음전(觀音殿) 등을 옛터에 새로이 복원하였다.회랑과 나머지 문들은 아예 없어진 것들을 재건하였고,석축과 계단은 대대적인 수리를 하였다.


불국사는 대웅전 일곽,극락전 일곽,비로전 일곽,관음전 일곽 등 크게 4개의 독립된 영역들로 이루어진 정합 가람이다.기록에는 이외에도 응진전(應眞殿) 일곽과 명부전(冥府殿)일곽이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각 일곽은 각기 다른 신앙 체계를 위한 독립된 불국토(佛國土)를 상징하는데 교리적 구별을 위해 회랑이나 담장으로 영역을 명확하게 구획하고 있다.


주 영역인 대웅전 일곽은 앞마당에 석가탑과 다보탑을 가진 쌍탑식 가람이다.7세기 중반 사천왕사를 창건하면서 시작된 쌍탑식 가람배치는
망덕사와 감은사를 거쳐 불국사에서 완성된다.불국사 이전의 쌍탑 가람들은 똑같은 형태의 쌍둥이 탑을 마당 좌우에 세웠지만 불국사는 완벽하게 다른 두 개의 탑을 세워 쌍탑 가람의 새로운 실험에 성공하였다.


석가탑이 전형적이고 추상적인 탑이라면,목조건축을 묘사한 다보탑은 매우 개성적이고 사실적인 탑이다.석가모니 부처가 영축산에서 강론한 내용을 담은 경전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견보탑품(見寶塔品)」에는 석가여래의 설법장에서 다보여래가 나타나 석가여래의 말씀을 증거한다고 하였다.석가탑은 석가여래를,다보탑은 다보여래를 형상화한 것이고,대웅전 일곽은 묘법연화경의 영산회상을 재현한 석가여래의 불국토이다.


석가여래가 주관하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서쪽으로 무한히 떨어진 곳에 극락세계가 있는데 이를 서방정토(西方淨土)라고도 부른다.이에 따라 불국사 극락전 일곽은 대웅전 일곽에서 서쪽으로 한 단 낮은 곳에 위치해있다.정문인 안양문(安養門)은 극락세계의 또 다른 이름이다.극락은 일곱 가지 보물로 장식되어 있고,구품 연못 위에 피어난 연꽃을 타고 극락왕생(極樂王生)한다고 하였다.칠보교(七寶橋)와 연화교(蓮華橋)는 그런 교리적 의미를 담고 있고,1970년대 발굴조사 때 연화칠보교 앞에서 구품연지(九品蓮池)터를 찾아내기도 하였다.이는 모두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에 나오는 교설들이다.


대웅전 일곽과 극락전 일곽은 사방을 회랑으로 감싼 넓은 영역이지만 뒤편에 놓인 관음전과 비로전 일곽은 담장으로 분리된 작은 영역이다.
그러나 높은 축대 위에 배치되어 나름대로 중요성을 잃지 않는다.원래는 관음전 앞에 '보락교(補洛橋)'라는 계단식 다리가 놓여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관세음보살이 살고 있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을 상징한다.


비로전 일곽은 화엄경에 근거한 연화장(蓮華藏)세계를 형상화한 곳이다.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수많은 불보살(佛菩薩)들의 궁극적 실체요,통합체이다.수많은 꽃잎이 모여 연꽃을 이루듯,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는 무수한 불보살들의 불국토를 통합하는 세계이다.비로전 일곽은 비록 크지 않지만 중심에 놓여서,석가여래,아미타여래,관세음보살의 불국토를 체계화하고 통합하는 의미를 갖는다.불국사라는 명칭은 신라를 부처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불국토들이 모여 하나의 나라를 이룬다는 교리적 의미를 담고 있다.그런 점에서 불국사는 건축으로 지어진 거대한 경전이요,불교의 우주관을 재현한 만다라(曼茶羅)이기도 하다.


불국사 지상에 세워진 목조건물들은 모두 조선 중기 이후에 재건된 것이지만 그 아래를 받치고 있는 기단과 초석,축대와 계단,그리고 석등과 석탑 등은 창건 때의 보물들이다.우아하고 세련된 형태와 정교한 솜씨로 다듬어져 석조 예술의 극치를 이루는 이 석조 유구(遺構)들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개념은 목조건축의 형태를 석조로 치환하는 변조법이다.


석축은 돌로 만든 기둥과 보의 결구(結構)로 이루어진 뼈대 사이에 막돌을 채워넣은 것이고 보뺄목과 기둥머리 등 목구조의 형상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있다.청운백운교나 연화칠보교의 난간들은 목조 난간과 같이 매우 정교하게 짜여진 석조물이고 범영루를 받치는 수미산형 돌기둥은 목조 공포(拱包)와 첨차(檐遮) 모양을 추상화한 것이다.


다보탑은 목조 형상을 석조화한 극치이다.신라의 정형탑인 석가탑도 목조 형상을 추상화한 것이지만,다보탑은 기단과 계단,난간과 기둥,주두(柱頭)와 지붕에 이르기까지 목조건축을 우아한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신라 때의 기단과 초석위에 건물을 재건하였기 때문에 하부 구조와 상부 구조가 일치하지 않는 모순도 보인다.대웅전과 극락전은 기둥 간격이 매우 넓은 구성으로,신라 때는 이 넓은 주간을 지지할 수 있는 특별한 목구조법을 가지고 있었다.그러나 조선 중기의 수법으로 건물을 재건함으로써 넓은 주간에 걸리는 지붕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평방이 처지고,이를 막기 위해 기둥 사이에 다시 샛시둥을 세워 겨우 유지하고 있다.


1973년에 복원된 관음전과 비로전도 조선시대의 목구조법을 채택함으로써 같은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이런 점에서 역사가 중첩된 유적들의 복원 시점을 언제로 잡을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김봉렬 지음 '불교건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