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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보각국사 부도(普覺國師 浮屠).충주 청룡사터 본문

☆~ 풍경소리/충 북

충주 보각국사 부도(普覺國師 浮屠).충주 청룡사터

푸른새벽* 2006. 10. 27. 10:14

 

 

 

 

 

 

 

 

 

보각국사 부도는

높이 2.63 미터로 바로 앞에는 배례석이 배치되어 있다

사리탑의 팔각 지대석은 앞의 배례석과 높이를 맞추기 이해 비교적 높은 편이다

팔각 지대석 위에 하대석.중대석.상대석이 차례로 올려져 있고

팔각의 하대석위에 16개의 연꽃잎이 복련으로 조각되어 있다

 

배흘림 모양의 중대석 각 면에는 구름위에 용이 노니는 모양과 사자상이

교대로 조각되어 있다

 

상대석은 하대석과 대칭 구조로 되어 있으며

팔각의 홈을 파서 사리탑의 탑신을 고정시키고 있다

 

보각국사 부도의 몸돌은

임신한 여인의 배처럼 유난히 부풀려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각 면에는 무기를 신장상(神將像)이 조각되어 있고

모서리에는 똬리를 튼 용이 휘감긴 배흘림 기둥에 부조로 새겨져 있다

특히 무기를 든 신장상과 용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사실적인 입체감으로 조각되어 있다

또한 기둥 위에는 목조 건축처럼 창방까지 보인다

옥개석 윗면은 여덟 귀퉁이가 높이 들려 있는데

옥개석의 가장자리 부분에는 용의 머리 모양이 장식되어 있다

 

옥개석 윗부분에는 연꽃잎을 조각하여 상륜부를 받치고 있으며

노반.복발.보개.보주가 거의 원형을 유지한 채 올려져 있다

 

자료에 의하면

탑신 윗면에는 사리공이 있어서 보각국사의 사리를 비롯하여

촛대.금망아지.금잔 등의 장엄구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도둑 맞았다고 한다

전국 어느 유물을 보아도 제대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드문 현실이

가슴 아프다

 

청룡사지 보각국사 부도는

유난히 조각이 섬세하여 조선 초기 석조 미술의 대표적인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김남용 지음 '국보과 보물이 있는 옛절터이야기'중에서*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국보 제197호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

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

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

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전체가 8각으로 조성되었는데, 바닥돌 위에 아래·가운데·윗받침돌을 얹어 기단(基壇)을 마련하고 그 위로 탑몸돌과 지붕돌을

올려 탑신(塔身)을 완성하였다. 기단은 모서리를 둥글게 처리한 8각으로, 아래받침돌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윗받침돌에는 솟은 연

꽃무늬를 새겼다. 가운데돌에는 사자상과 구름에 휩싸인 용의 모습을 교대로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각 면마다 무기를 들고 서 있는

신장상(神將像)을 정교하게 새겨 놓았으며, 그 사이마다 새겨진 기둥에는 위로 날아오르는 이무기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 높이 들려있는데 마치 목조건축의 아름다운 지붕 곡선이 살아난 듯하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또한 탑 가득히 새겨진 조각과 둥글게 부풀린 외형이

어우러져 화려함을 더해주고 있다. 탑신의 기둥과 지붕의 곡선, 그리고 지붕 귀퉁이의 용머리조각 등에서 목조건축의 양식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건축과 비교하여 감상할 만하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