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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강녕전(康寧殿).서울 경복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강녕전(康寧殿).서울 경복궁

푸른새벽* 2006. 11. 17. 23:35

 

 

 

강녕전(康寧殿)


사정전의 북행각에 솟을 삼문으로 서 있는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강녕전(康寧殿)일곽이 펼쳐진다.이곳은 임금의 침전(寢殿)이자 일상 생활을 영위하던 사적인 공간이다.교태전(交泰殿)과 더불어 연침(燕寢)또는 연거지소(燕居之所)로도 일컬어지는 이들 전각은 궁궐 내부 깊숙한 곳에 입지함으로써 그야말로 구중 궁궐(九重宮闕)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임금의 정침(正寢)인 강녕전은 정면 11칸 측면 5칸의 남향 건물로 장대석 네벌대로 기단을 쌓고 네모뿔대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기둥머리에 창방을 결구한 다음 이익공으로 공포를 짰다.건물의 평면은 가운데 3칸이 대청이고 그 좌우로 각각 3면씩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온돌방은 '井'자 형태로 9개의 방을 구성하여 그 한가운데 방에서 임금이 주무시고
그 주변 방에서는 상궁들이 숙직을 하였다.대청앞 3칸 툇간은 개방했으며 기단앞에는 비교적 넓은 월대를 형성하였다
건물 뒷면에는 평난간을 붙인 쪽마루가 길게 이어졌다.처마는 부연(附椽)을 단 겹처마이며 지붕은 무량각(無樑閣)팔작지붕이다.가구중 특이한 점은 종도리가 2개 라는 것인데 이는 무량각 지붕의 구성과 관련이 있다


강녕전은 좌우에 각각 연생전과 경성전을 거느리고 있는데 서향한 연생전을 동소침(東小寢),동향한 경성전을 서소침(西小寢)이라고 한다.또한 연생전의 북쪽에는 연길당이,경성전의 북쪽에는 응지당이 자리를 잡아 동서남북 행각과 더불어 강녕전 일곽을 이룬다.연생전과 경성전은 강녕전 앞쪽으로 좌우 대칭 즉,건물 앞면이 동서로 마주보며 배치되었으며 연길당과 응지당은 남향 건물로 강녕전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치우쳐 좌우 대칭으로 앉아 있다


강녕전 일곽은 태조의 경복궁 창건 당시에 건립되었으나 명종 때 불에 타 다시 지었으며 또다시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시 복원되었다.이후 다시 불에 타 고종25년(1888)에 교태전 일곽,자경전 일곽 등과 함께 중건되었다.그러나 강녕전 일곽은 중건된 지 채 반세기가 지나지 않아서 다시 훼멸되고 말았다.1917년 창덕궁 화재가 발생하여 내전 전각들이 소실되자 일제는 강녕전을 헐어 그 재목들로 희정당(熙政堂)을 복원하였던 것이다.따라서 원래의 강녕전은 창덕궁에 가 있는 셈이다.지금 경복궁에 있는 건물은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강녕전의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침전 건물에 용마루를 얹지 않는 것은 임금과 왕비의 신분이 지고지존(至高至尊)함을 상징하는 격식이다


양성을 한 팔작 지붕의 합각마루에 용두,추녀마루에 잡상을 배열하였으며 합각면에는 만수무강과 강녕을 기원하는 문양을 그렸으며 역시 길상을 나타내는 아(亞)자 무늬 창호가 아름답다.경성전 북쪽 즉,응지당 서쪽에는 임금이 식수 및 세숫물로 이용하던 어정(御井)이 남아 있다

 

 

 

*강녕전 내무 모습

가운데 우물 마루를 깐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 각각 3칸에 9개씩의 온돌방을 조성하였다 

 

 

 

  *강녕전 천장

천장은 소란반자로 마감하여 봉황 무늬를 곱게 단청하였다

 

 

 

 *강녕전 서쪽 측면과 응지당과 경성전

지금은 각각 독립된 구조이지만 원래는 모두 회랑,즉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정(御井)

임금의 식수와 세숫물로 사용하던 샘이다

 

 

 

 *강녕전 뒤쪽에서 흠경각으로 드나드는 샛문

응지당 동쪽 측면 기단 위의 살대를 꽂은 샛문과 조화를 이룬다

 

 

 

 *동소침(東小寢) 연생전

서향으로 앉아 경성전과 마주보고 있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