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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즉조당(卽祚堂) 임진왜란으로 의주(義州)까지 몽진했던 선조가 난이 수습된 뒤 환도하여 시어소(時御所)로 사용했던 건물이다.1623년 계해반정(癸亥反正)으로 광해군이 뒤를 이어 이곳에서 인조가 등극한 이후부터 즉조당(卽祚堂)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영조가 덕수궁으로 이어하기 전,고종이 각각 선조 환도 삼주갑과 오주갑 때 이곳에 와서 선조임금을 회상하며 배례를 올리기도 하였다.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부터 덕수궁으로 이어(移御)한 뒤 중화전을 건립하기 전까지 이 건물을 정전으로 활용하였으며 건물 이름도 태극전(太極殿).중화전 등으로 바뀌었으나 1902년에 중화전이 건립된 이후로는 다시 즉조당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현재의 건물은 1904년의 화재로 소실된 이후 같은 해 중건한 것이다.현재,즉조당에는 광무 ..
준명당(浚明堂)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 공관으로부터 경운궁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하여 많은 전각들을 새로 짓던 시기, 즉 1897년 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준명당은 경운궁의 편전 성격을 띤 내전의 하나로 고종이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등 정사를 보살피던 곳인데 현존 건물은 1904년의 화..
중화전(中化殿) 중화전은 경운궁의 정전으로 대한제국시대 고종만이 이곳에서 조하(朝賀)를 받았다.조선시대 궁궐의 정전,즉 경복궁의 근정전,창덕궁의 인정전,창경궁의 명정전,경희궁의 숭정전이 모두 가운데가 '政' 자 돌림이지만 경운궁의 정전 중화전만이 그 틀을 깼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으로 이어한 이후 중화전 등 주요 전각들이 본격적으로 중건되기전 까지 5년 남짓의 기간 동안 즉조당 이 정전으로 사용되었다.그러나 황제국을 칭하면서 국가의 중흥을 도모하던 고종은 이에 만족할 수 없었기에 새로운 치조 공간의 영전을 단행하였다 이에 따라 중화전 일곽은 광무 6년(1902)에 창건되었다.창건 당시의 중화전은 중층으로서 경복궁의 근정전,창덕궁의 인정전에 견줄한한 규모였다.이때,중화전 행각 128칸과 중화문,조원문 ..
중화문(中化門) 대한문 안 돌다리를 건너서 서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꺾어 중화문이 남향으로 앉아 있다.대한문에서 중화전에 이르는 길도 어로(御路)가 형성되어 있어야 마땅하나 그렇지 못하다 중화문은 경복궁의 근정문,창덕궁의 인정문,창경궁의 명정문과 같은 성격의 전문(殿門)이다.즉,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中化殿)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원래는 좌우로 행각이 늘어서 있었으나 현재는 중화문만 덩그렇게 남아 있다 광무(光武)6년(1902) 7월에 정초하고 8월에 상량하였으나 1904년의 화재 때 소실되었다.이후,중화전이 복구될 때 중화문도 같이 중건(1906)된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단층인 중화문은 장대석 세벌대로 기단을 높이 세우고 둥근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세웠다 단층의 약..
대한문(大漢門) 덕수궁의 정문 대한문은 동향으로 앉았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이 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다 또한,원래는 덕수궁의 정문이 아니었다.광화문(光化門).돈화문(敦化門).황화문(弘化門).흥화문(興化門) 등 다른 궁궐의 정문들처럼 이름 가운데 '화(化)'자가 들어 있던 인화문(仁化門)이 정문이었다.그 위치는 중화전과 함녕전 사이쯤에서 내려다보이는 남쪽이었으며,남향 문이었다고 한다 정전인 중화전을 건립하지 않고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할 때까지는 삼문(三門)형식을 갖추지 않은 인화문이 정문이었던 것이다.그러나,고종이 덕수궁에 이어한 이후 궁궐을 중건하면서 중화전과 중화문을 새로 짓고 외삼문(外三門)으로 조원문을 세워 법전(法殿)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이어 인화문 자리에는 건극..
덕수궁德壽宮(경운궁慶運宮) 덕수궁은 서울에 남아 있는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많은 부분이 사라지고 훼손되어 본래의 모습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덕수궁의 돌담길 또한 원래는 덕수궁 영역의 일부로 1922년 일제가 덕수궁 서쪽에 있던 선원전(璿源殿)터를 관통하는 도로를 만들면서 생긴 길일뿐 유서 깊은 궁궐의 외곽 길이 아니다.일제는 우리의 지배권을 강탈한 뒤 덕수궁터를 조직적으로 분할 매각했는데 이는 궁궐이 지니고 있는 국권과 자치능력의 상징성을 파괴하기 위한 고도의 책략이었다.그 결과 매각된 터에는 현재의 모습처럼 외국 공사관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1910년 당시의 덕수궁 평면도를 보면 덕수궁 영역이 상당히 넓었음을 알 수 있고 특히 최근 미국대사관과 아파트 신축 부지로 문제가 되고 있는 선원전터와 주변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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