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경주시 남산동 1130
- # 경주시 남산동 227-3
- #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 #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 # 금동반가사유상
- #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 #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 240
- # 전북 익산시 모현동 1가
- # 중초사지 당간지주
- #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 # 칠곡 송림사전탑
- #'기축'명 범종
- #17세기 불상
- #18세기 중반 불화
- #2017 박물관전시
- #2017국립민속박물관 전시
- #2017년 민속박물관전시
- #7세기 전반 금동불
- #8세기 중엽 석조물
- #9세기 석탑양식
- #大唐平濟國碑銘
- #가을꽃
- #가을나무
- #가장 불쌍한 당간지주
- #각연사 문화재
- #각연사 보물
- #각연사 부도
- #각연사 비지정문화재
- #강릉 관음리석불대좌
- Today
- Total
목록☆~ 바람소리 (325)
바람처럼 떠나다
경천사지십층석탑(敬天寺址十層石塔) 경천사(敬天寺)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사』에 나오는 것으로 예종(睿宗)이 이곳에서 숙종(肅宗)의 추모제를 열었다는 기록이다.그 후 계속해서 고려 왕실의 추모제가 열렸으며 조선 태조대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아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경천사지석탑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는데,대리석은 이전에 탑의 재료로 사용하지 않았다.평면 구조는 亞자형 형태와 4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탑신에 비해 낮고 3중으로 된 기단은 정사각형 한 변에 직사각형이 돌출되어 亞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그 위에 기단과 동일한 형태의 탑신이 3중으로 올려져 있다.둘째,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탑신과 지붕이 10층까지 이어져 있으며 그 위로 상륜부가 설치되어 있다.이러첨 경천사지..
아미산(峨嵋山) 보물 제 811호 교태전 건물 뒤쪽으로 돌아서면 아담한 동산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후원(後苑)이 있다.아미산(峨嵋山)이다 이 동산은 태종 때 조성되었는데,경회루(慶會樓)의 연못을 판 흙을 이곳에 쌓아서 만들었다.우리나라 전통 조경에서는 마당에 화원을 꾸미지 않아 후원이 발달하였다.아미산 위쪽으로는 큰 나무들을 심었고,아래 언덕으로는 화계(花階)를 조성하였다 원래의 아미산은 중국 산동성 박산현에 있다.그렇다면 작은 동산에 불과한 후원을 굳이 아미산이라고 이름 붙인 연유는 무엇일까.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은 백두산(白頭山)의 정기를 잇는다고 한다.따라서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따라 그 정기가 이곳 경복궁까지 뻗치기를 기원했음이 아닐까? 아미산에는 두벌대씩의 장대석으로 네 단의 석축을 쌓고,그 위에 ..
고달사 쌍사자석등(高達寺雙獅子石燈) 높이 2.43m. 보물 제 282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이 석등은 고달사터 부도 앞에 있었으나 1959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왔고 고달서터 부도 앞엔 석등을 놓았던 팔각 지대석만 남아 있다 사자 두마리가 힘찬 모습으로 웅크리고 앉아 중대석과 상대석 그리고 화..
교태전(交泰殿) 강녕전 북행각에 솟을 삼문으로 세운 양의문을 들어서면 교태전(交泰殿)이다.왕비의 시어소(時御所) 즉,내명부(內命婦)의 일들을 살피던 전각이자 침전으로 중궁(中宮)또는 중전(中殿)이라고도 했다.이는 또한 왕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단층 남향인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9칸 측면 5칸이며 장대석 네벌대로 기단을 쌓고 네모 뿔대로 다듬은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기단 앞에는 가운데 세 칸에 맞추어 세 틀의 돌계단을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였는데 소맷돌은 없다.기둥머리에 창방을 결구한 다음 이익공으로 공포를 올렸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교태전은 동쪽으로 원길헌(元吉軒)을,서쪽으로 건순각(健順閣)을 익각으로 거느리고 있다.건물 앞면은 교태전의 좌우로 원길헌과 함흥각이 이어지고 이는 다..
강녕전(康寧殿) 사정전의 북행각에 솟을 삼문으로 서 있는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강녕전(康寧殿)일곽이 펼쳐진다.이곳은 임금의 침전(寢殿)이자 일상 생활을 영위하던 사적인 공간이다.교태전(交泰殿)과 더불어 연침(燕寢)또는 연거지소(燕居之所)로도 일컬어지는 이들 전각은 궁궐 내부 깊숙한 곳에 입지함으로써 그야말로 구중 궁궐(九重宮闕)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임금의 정침(正寢)인 강녕전은 정면 11칸 측면 5칸의 남향 건물로 장대석 네벌대로 기단을 쌓고 네모뿔대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기둥머리에 창방을 결구한 다음 이익공으로 공포를 짰다.건물의 평면은 가운데 3칸이 대청이고 그 좌우로 각각 3면씩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온돌방은 '井'자 형태로 9개의 방을 구성하여 그 한가운데 방에서 임금이 주무..
사정전(思正殿) 근정전의 북행각에 솟을 삼문(三門)으로 서 있는 사정문(思正門)으로 들어서면 곧 평상시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사를 살피던 편전(便殿)일곽이다.그 중심 전각이 사정전(思政殿)인데 창덕궁의 선정전(宣政殿)및 창경궁의 문정전(文政殿)과 같은 용도이다.경복궁의 시사지소(視事之所)로서 창건 당초에는 보평청(報平廳)이라 하였으나 곧 사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하의 이치란 생각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잃게 되는 것이므로 임금이 깊이 생각 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사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사정전의 동쪽에는 만춘전(萬春殿)이,서쪽으로는 천추전(千秋殿)이 자리를 잡아 편전 일곽을 형성하였다.만춘전과 천추전은 사정전을 보좌하는 이른바 소편전(小便殿)인데 세종 때 창건된 것으..
*근정전 상하월대의 난간 기둥에는 모두 36마리의 돌 짐승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四神인 용.호랑이.주작.현무가 각각 한 쌍씩 그리고 개와 돼지를 제외한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이름 모를 돌짐승(瑞獸)들로 구성되었다
근정전(勤政殿) 광화문을 들어서면 흥례문이 복원되어 있고,영제교를 건너 근정문을 들어서면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勤政殿)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조선 왕조의 위엄을 상징하는 ,모든 궁궐 전각 중이 으뜸이다.현재의 건물은 역시 고종 시절 중건한 것이며 개국 당시의 창건 건물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행각을 단랑에서 복랑으로 바꾸고 월대를 세로 만드는 등 변화를 주었다 월대는 건물 앞뒤와 좌우 모두 상하 이중으로 형성하였으며 그 위에 하엽동자(荷葉童子)와 팔각 돌난대로 구성한 돌난간을 세웠다.계단과 만나는 부분과 모서리 부분에 세운 각 엄지기둥에는 4신상(四神像)과 12지신상 등을 조각하여 방위에 맞게 배치함으로써 상징적으로 정전을 수호하게 하였다.건물 앞 뒤면에 하나씩,그리고 건물 좌우에 각각 두 개씩의 ..
근정문(勤政門) 북악을 주산으로 두고,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낙산을 좌청룡(左靑龍)으로 거느려 자리잡은 근정전의 정문은 근정문이다 근정전 바로 앞 남쪽에 위치하여 정전으로 드나드는 주 출입문 역할을 하며 문 좌우로 뻗은 행각(行閣)은 북쪽 방향 직각으로 꺾여 근정전을 장방형으로 둘러 싸고 있다 창건 당시부터 이 문의 남쪽에는 금천교 즉,영제교와 광화문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조선 총독부 건물이 버티고 있었다 고종 때 중건하면서 근정문 행각의 규모 및 부 출입구의 위치 등이 창건 당시와 달라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근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중층 우진각 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다.장대석 세벌대로 기단을 꾸미고 둥글게 다듬은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
흥례문(興禮門)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을 위해 1916년에 철거 되었던 흥례문 일곽이 복원 되었다.2001년 10월에 복건(復建)되었으니 85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그동안 흥례문 터에는 1926년에 일제가 완공한 서양식 건물이 조선총독부.미군정 청사.중앙청. 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한 세기 가까이 동안 버티고 있었다.1990년대 중반,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그 건물의 철거 문제를 놓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으나 민족 정기 되찾기라는 대의 명분이 또 다른 역사의 보존이라는 철거 반대 주장을 눌렀다.그리고 마침내 흥례문이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조선총독부 청사가 일제 식민 통치의 총본산이었다는 측면에서 흥례문 복원의 의미는 각별하다 흥례문 일곽이 복원되면서 비로소 광화문 - 근정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