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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慶會樓).서울 경복궁 본문
경회루(慶會樓)
근정전의 서북쪽 방향,강녕전의 서쪽 네모꼴의 큰 연못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건물이 경회루(慶會樓)이다
경복궁 창건 당초에는 작은 규모의 누각에 불과 하여였으나 태종 12년(1412) 공조판서 박자청(工曺判西 朴子靑)이 연못을 크게 확장하고 누각도 큰 규모로 새로 지었다.그후 성종 때와 연산군 때 수리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창시 재건되었다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외국에서 온 사신을 위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하륜(河崙)은 '慶會'의 뜻을 '임금과 신하가 덕(德)으로써 만난다'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남향하고 있는 경회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 건물이며 전후좌우에 툇간을 둔 11량 구조의 이익공 양식으로 기둥과 기둥사이에 많은 화반을 얹어 지붕의 하층을 받치고 있다.처마는 부연을 단 겹처마이다. 지붕은 팔작 지붕이며 각 마루는 양성을 하여 용마루에는 취두,내림마루에는 용두,그리고 추녀마루에는 잡상을 배열하였다.특히 경회루 추녀마루의 잡상은 11개가 배치되어 우리나라 건물들 중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넓고 높은 합각면은 아우 장식 없이 박공으로 마감하였다.지붕은 전체적으로 물매를 급하게 함으로써 시각적으로 경쾌하고 간결하면서도 위엄 있게 보인다
네모꼴의 큰 연못 안에 동쪽으로 치우쳐 장대석 여러 단으로 축대를 쌓아 건물 기단을 형성하였다.기단의 둘레를 따라 다리 또는 계단과 만나는 부분 및 각 모서리에 엄지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하엽동자를 촘촘히 받쳤다.그 위에 팔각 돌난대를 둘러 난간을 세웠으며 엄지기둥에는 돌짐승들을 조각해 얹었다.건물 아래층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길게 뻗었으면서도 소박미가 돋보이는 아래층 기둥은 모두 48개이다.그 중 바깥 기둥 24개는 아래가 넓고 위로 가면서 좁아지는 네모 뿔대 기둥이고 안쪽 기둥 24개는 두리기둥이다 이 두리기둥도 위로 가면서 지름이 좁아진다.네 면을 모두 개방한 아래층 전체를 받치고 있는 이러한 기둥은 웅장한 경회루의 멋을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아래층의 천장은 화려한 꽃무늬를 한 우물천장으로 마감하였으며 건물 앞면 동쪽과 서쪽에 위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을 설치하였다
위층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전후좌우면을 따라 계자각(鷄子脚)난간을 둘렀다.마루는 바닥의 높이가 세 단계로 구분이 되었는데, 가운데 3칸이 가장 높고 그 다음 12칸은 한 뼘 정도 낮다.그리고 바깥쪽 20칸은 다시 한 뼘쯤 낮다.이러한 높낮이 경계 부분에는 들어얼개 창호가 달렸다.창호를 내리면 각각 닫힌 방이 되고,창호를 올리면 넓게 터진 마루가 펼쳐지는 것이다.가운데 가장 높은 곳은 당연히 임금이 앉던 자리이다.즉,가운데 가장 높은 3칸은 정당(正堂)으로 천지인(天地人)의 삼재를 나타내고 그 3칸을 구획하는 8개의 기둥은 팔괘(八卦)를 표현한다.그 다음 12칸은 정당을 보조하는 헌(軒)으로 1년 12달을 상징하며 16개의 기둥 사이에는 네 짝씩의 문이 있어 64괘를 이룬다.또한 가장 바깥쪽 마루 20칸에 있는 24개의 기둥은 24절기를 나타낸다
이 경회루 연못은 물로 불을 제압함으로써 궁궐을 보호하며 경복궁의 부족한 명당수를 확보하고,땅의 습기를 다스리기 위한 목적이 있다고 한다..고종 때의 경복궁 중건 당시에는 이 연못 속에 구리로 조각한 용 두마리를 잠수시켰다고 한다 연못의 북쪽 호안에는 경회루에서 서북쪽 방향으로 육모 지붕을 한 하향정(荷香亭)이 고즈넉이 앉아 있다
경회루는 단일 평면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누각이다.이러한 거대한 규모의 누각 건물을 견고하게 가구했다는 점과 연못 가운데 세웠으면서도 무리없이 견딜 수 있도록 처리한 점 .그리고 거대한 건물을 이익공의 간결한 양식으로 결구했으면서도 위층 바깥 기둥 사이에 낙양을 다는 등 연회 장소에 걸맞게 치장했다는 점 등에서 경회루는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경회루는 계유정난(癸酉靖難)이후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 양위를 하며 옥새(玉璽)를 넘겨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경회루 서쪽에 나지막하게 조성한 인공 섬
궁궐 연못에 조성된 섬들이 대부분 등근 데 비해 이 섬들은 네모졌다.'천원지방'의 개념을 벗어난 것이다 .경회루 서쪽 측면의 기단에는 돌계단을 붙여 배를 탈 수 있도록 하였다
*경회루는 웅장하면서도 소박하다
이러한 이미지는 아래층의 돌 기둥과 높고 넓게 마감한 지붕 합각면의 장식 없는 박공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처마나 천장,난간,창호 등은 연회 장소에 걸맞게 치장을 하였다
*아래층에는 모두 48개의 돌기둥을 세웠다
네 면의 바깥기둥 24갠느 위로 가면서 좁아지는 네모 뿔대 기둥이고 바닥을 한 단 높여서 세운 안쪽 기둥 24개는 역시 위로 가면서 지름이 좁아지는 두리기둥이다
*경회루에서 서북쪽 방향 호안에 고즈넉이 앉은 하향정(荷香亭)
1950년 대에 건립되었다.육모 기둥에 육모 지붕을 하였다
경복궁경회루(景福宮慶會樓)
국보 제224호
서울 종로구 세종로 1-1 경복궁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 연못 안에 세운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경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규모였으나, 조선 태종 12년(1412)에 연못을 넓히면서 크게 다시 지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돌기둥만 남은 상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270여 년이 지난 고종 4년(1867) 경복궁을 고쳐 지으면서 경회루도 다시 지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는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앞면 7칸·옆면 5칸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누각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태종 때에는 48개의 기둥에 꿈틀거리는 용을 조각하였으나, 다시 지으면서 지금과 같이 간결하게 바깥쪽에는 네모난 기둥을, 안쪽에는 둥근기둥을 세웠다. 1층 바닥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고 2층 바닥은 마루를 깔았는데, 마루 높이를 달리하여 지위에 따라 맞는 자리에 앉도록 하였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으로,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이다.
*문화재청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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