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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회암사지 지공선사부도및석등(指空禪師浮屠및石燈).경기 양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회암사지 지공선사부도및석등(指空禪師浮屠및石燈).경기 양주

푸른새벽* 2007. 1. 3. 00:11

 

 

 

 

 

지공화상 부도와 석등(指空和尙浮屠.石燈)


지공화상 부도와 석등은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웠다
그 2년 전인 1370년 원나라에서 제자 달예(達睿)가 지공화상의 사리를 봉안해 고려로 가져오자 제자 나옹선사는 서둘러 회암사에 봉안했다


석물은 맨 앞단에 부도비를 세우고 한 단 위에 석등과 석상.부도가 한 줄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부도는 8각 지대석 위에 상중하 기단을 두었으나 우람한 크기에 비해 문양이나 조식이 전혀 없어
단조롭고 수수하며,역시 아무런 조각도 없는 중대석과 몸돌을 둥글게 다듬어 얹었다
전체적인 비율에 비해 지붕돌이 크고,길쭉한 상륜부 정상에는 보주가 조각돼 있다
부도의 높이는 3.65m ,비신의 가로 세로가 각각 2m이다
부도 앞에는 큼직한 공양돌이 높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어 특이한데,
목조에서나 볼 수 있는 낮은 책상다리 같은 받침대의 변화를 눈여겨 볼 만하다


석등은 얼른 보아 왕릉에서 보는 장명등처럼 생겼다
방형의 상중하대석 위에 2짝으로 된 화사석을 마주 붙여 화창이 앞뒤 두 곳만 나 있고 그 위로 4각 지붕돌을 얹었다
중대석이 잘록한 허리처럼 날렵한 데 비해 화사석을 받친 상대석이 큼직하고,
화사석 위의 지붕돌은 석등 전체를 덮을 만큼 크고 두툼한 게 부도의 지붕돌과 거의 맞먹는다
다만 부도의 지붕돌은 낙수면에 곡선을 주었으나,석등 지붕돌은 선이 반듯한 사각형에 낙수면도 곧아 완곡한 느낌을 준다
석등 정상에는 노반 위에 보주가 있다
석등도 부도와 매한가지로 조각이나 장식이 없어 단순 소박하다


석등 앞에 서 있는 부도비는 부도가 조성된 지 2년이 지난 1374년에 세워졌다
지대석 위로 4각의 높은 굄대를 놓고 237cm 키의 비신을 세운 다음,목조건축 모양의 지붕돌을 얹었는데 크고 우람하다
전체 높이는 365cm.
비문은 이색이 썼다.지공화상 부도와 석등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49호이다


지공화상(指空和尙)
인도 마가다(Magadha)국 만왕(滿왕)의 셋째 왕자로 태어나 여덟 살에 나란타사 율현을 스승으로 계를 받는다
당시 세계적으로 유서 깊은 사원이자 대학이었던 나란타사는 이슬람교도의 침입으로 폐교가 되고
지공화상은 이 대학의 마지막 졸업생이 된다


지공화상은 19세 이후 인도 전역의 순례를 마치고 중국 원나라에 들어와 교화를 편다
지공화상은 바로 이 무렵인 1326년(충숙왕 13년) 3월 고려땅에 들어와 1328년 9월까지
2년 반 동안 금강산 법기도량,개경 감로사와 숭수사,인천의 건동선사,양산 통도사 등
전국 사찰을 방문해 법회를 연다


지공화상은 특히 선 사상과 무생계법의 계율관을 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불교는 나말을 기점으로 폭넓은 계층에서 선불교가 중흥되었던 터에
한 이국 스님에 의해 수행자로서 투철한 지계정신을 재충전받으며 크게 고무됐던 것으로 보인다


지공화상이 이곳 회암사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알 수 없다
지공은 다시 원나라로 들어가 고려인이 지어준 법원사에서 불법을 편다
1348년 부터 11년간 원나라에서 공부한 나옹은 3년 동안 지공화상 문하에서 법을 배우고
3번이나 찾아가 법을 물어 마침내 심인을 전수받는다
또한 이무렵 고려국 유학생이었으며 뒤에 무심선으로 유명했던 백운 경한(白雲景閑.1298~374),
나옹의 제자가 된 무학자초(無學.1327~1403)등이 지공화상 문하에서 불법을 배웠으니
고려 말 조선 초 불교를 주도했던 인물들에게 다시금 영향을 미치는 것이엇다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고려로 들어와 국경을 넘나들며 법을 폈던 이국의 한 유능한 선사는
1363년(공민왕 12년)연경 천수사에서 입적에 든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372년 제자 달예(達睿)가 영골을 모셔왔고
공민왕은 명을 내려 이곳 회암사에 부도와 부도비를 세우고 사리를 안치하니 나옹이 그 일을 담당했다
지공화상에 관한 이 같은 내력은
목은 이색(李穡)이 지은 지공화상 비문
'서천제납박타존자부도명병서'(西天提納薄陀尊者浮屠銘幷序)에서 밝혀졌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지공선사부도및석등(指空禪師浮屠및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9호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1 


회암사에 놓여 있는 부도와 석등이다.


회암사에 서 있는 이 부도는 회암사를 창건한 인도인 승려 지공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이후 많이 사용된 양식으로,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基壇)은 3단으로 올렸는데 그 중 가운데받침돌만 배가 볼록하다. 아

무런 장식이 없는 탑신(塔身)은 둥근 공모양이다. 지붕돌은 윗면의 여덟 모서리선이 두툼하며 처마의 각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머리장식들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석등은 모든 부재가 4각으로, 3단을 이루는 받침돌 위에 등불을 켜두는 곳인 화사석(火舍石)과 지붕돌을 올려놓았다. 화사석은 앞뒷면

2곳에만 창을 내었고, 지붕돌은 부도에서와 같이 윗면의 네 모서리선이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두 작품 모두 고려 공민왕 21년(1372)에 세운 것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