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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부도와 석등.부도비(懶翁禪師浮屠.石燈.浮屠碑).양주 회암사터 본문

☆~ 풍경소리/경 기

나옹선사부도와 석등.부도비(懶翁禪師浮屠.石燈.浮屠碑).양주 회암사터

푸른새벽* 2007. 1. 3. 00:16

 

 

 

 

나옹선사부도와 석등.부도비(懶翁禪師浮屠.石燈.浮屠碑)

 

나옹선사는 24세에 회암사에 와서 4년간의 용맹정진 끝에 불법을 깨닫고 법을 폈으나
여주 신륵사에서 열반에 드는 바람에 부도와 부도비는 현재 회암사터와 신륵사 두 곳에 있다
회암사터 부도와 석등은 1376년에,신륵사 부도와 부도비.석등은 1379년에 세운 것으로 기록은 전한다


회암사터에 있는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은 바로 아래 모셔진 스승 지공화상 부도.석등과 별 차이가 없다
거의 같은 시기에 모셔진 탓일 것이고,모양은 비슷하나 솜씨는 오히려 더 간소화된 편이다


부도는 8각 지대석 위에 상중하의 기단을 두었으나 역시 아무 조각도 없이 돌의 뼈대만 다듬었고
8각 지붕돌 위에 맷돌 같은 보륜 4개를 얹은 다음 노반과 보주를 놓았다
비율도 그다지 좋은 편이 못된다
부도의 높이는 3.6m


부도 앞 4각의 공양대는 통나무를 뭉툭하게 잘라 네모지게 다듬은 것 같은 받침돌 3개가 받치고 있다
석등은 방형의 상중하 대 위에 2매의 판석을 세워 화사석을 받치고,4각의 지붕돌을 얹었으며
상륜부를 두었다
석물 전체의 구조는 같으나 단순 간결하면서 투박하다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50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나옹선사부도및석등(儺翁禪師浮屠및石燈)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경기 양주시 회암동 산8-1 


회암사 경내의 지공선사 부도 아래쪽에 있는 나옹선사의 부도와 석등이다. 나옹선사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본명은 혜근이다. 오대산

상두암에 머물렀고, 공민왕에게 설법을 하였다. 회암사의 주지가 된 후 절을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에 입적하였다.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이 부도는 나옹선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8각을 기본형으로, 기

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3단을 이루는 기단의 가운데받침돌은 배가 불룩한 북모양을 하고 있다

. 둥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조각없이 간결하다. 지붕돌은 경사가 완만하며,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려갔다. 지붕돌 위로는 하나

의 돌로 조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석등은 4각을 기본형으로, 3단의 받침 위로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을 올린 후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화사석은 앞

·뒷면에 창을 내었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처마는 느린 곡선을 그리다 네 귀퉁이에서 위로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받침 위로 복발(覆鉢), 보주(寶珠)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문화재청자료*


나옹선사의 부도비는 삼성각 뒤 산등성이에 세워져 있었다고 하나 2006년 12월에 찾아가 보았더니
긴 세월 깎이고 닳아서 귀부만 겨우 형상을 알아 볼 수 있을 뿐 비신은 없었고
근래에 새로 만들어 세운 부도비모조품이 창백하게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