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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산 신륵사(鳳尾山 神勒寺 ).경기 여주 본문

☆~ 절집.절터/경 기

봉미산 신륵사(鳳尾山 神勒寺 ).경기 여주

푸른새벽* 2007. 1. 7. 00:00

  

 

 











 

 






 











 

 






 











 

 






 






 






 






 






 











 

 











 

 











 

 











 






 






 






 






 






 






 

 






 






 






 

봉미산 신륵사(鳳尾山 神勒寺)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경기 여주읍에서 여주대교를 건너면 낮고 부드러운 곡선의 봉미산(鳳尾山)이 나서고 이 산 남쪽 기슭에 신륵사가 자리잡고 있다
뒤로는 숲이 우거지고 왼쪽 곁으로는 안벽(岸壁)이,마당 앞으로는 여강(驪江)이라 부르는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절경이다.


강변의 너른 마당을 지나면 왼쪽에 구룡루(九龍樓)가 있다.구룡루를 돌아들면 맞은편에 극락보전이 있다.아미타불 도량인 신륵사 금당(金堂)이다.


금당 앞에는 보물 제 225호인,구름과 용무늬가 아름다운 다층석탑이 서 있고,양 옆으로는 스님들의 선방인 선각당(禪覺堂)과 고려시대 이 후 시인 묵객들이 묵어 가며 자연을 노래했던 적묵당(寂默堂)이 있다.극락보전 왼쪽으로 비껴서서 만나는 그림 같은 단칸집이 조사당이고 북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나옹선사 석종부도와 부도비,석등이 건립되어 있는데 모두 눈여겨 볼 만한 유물들이다.


구룡루 앞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오르면 유명한 다층전탑(多層塼塔)과 대정각비가 남한강을 굽어보고 서 있다.나옹선사의 다비장에 세운 삼층석탑과 나옹선사의 호를 딴 정자 강월헌(江月軒)이 있다.


신륵사는 아름다운 경관과 많은 유물.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지만 정작 이 절의 내력은 소상치가 않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유물이다 유적이 없고 고려 우왕 2년(1376)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되었다.스러져가던 신륵사를 대대적인 중창불삼로 일으킬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현재 남아 있는 조형물도 모두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것이다.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또다시 위축된 신륵사를 구해낸 것은 광주 대모산에 있던 영릉을 신륵사 인근 능서면 왕대리로 이장해 오면서이다.세종의 깊은 불심을 헤아려선지,왕실에서는 신륵사를 원찰로 삼았고 절 이름도 잠시 보은사(報恩寺)라 불렀으며,전각과 당우들을 새롭게 꾸몄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신륵사는 500여 승군을 조직해 싸웠고 이때 극락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현종 12년(1671) 무렵 부터 다시 일으켜 온 것이 오늘날의 신륵사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