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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터승탑(驪州 高達寺址 僧塔).경기 여주 본문

☆~ 풍경소리/경 기

여주 고달사터승탑(驪州 高達寺址 僧塔).경기 여주

푸른새벽* 2007. 1. 12. 23:55

 

 

 

 

 

 

 

 

 

 

 

 

 

 

 

 

 

 

 

 

 

 

 

 

 

고달사터 부도(高達寺址浮屠)


고달사터 부도는
고달사터 맨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그 장중함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다


높이 3.4m인 부도의 전체 구조는 원종대사 부도와 비슷한 팔각원당형이나
지대석에서 완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원종대사 부도보다 앞선 연대의 것으로 추측된다
원종대사 부도는 4개의 돌을 정교하게 짜맞춘 방형인 데 비해 이 부도는 팔각의 지대석을 놓았다
기단부 .탑신부.지붕돌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으로
신라의 양식을 비교적 정직하게 ㅇ어받은 고려시대 초기 부도의 빼어난 작품이다
상륜부는 아예 없어지고 보개만 얹혀 있다


지대석은 중심에 놓인 팔각 대석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매의 판석으로 짜여 있다
지대석 위로는 두툼한 돌로 굄대를 놓아 다소 높다는 느낌을 준다
아래 부분은 안상을 음각으로 새겼는데,그 중심에 귀꽃모양의 안상을 한 면에 한 구씩 꾸민 것이 이채롭다
상단에는 연꽃을 복련으로 둘러 피게 해 시원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중대석의 둥근 몸돌에는 거북을 중심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노닐고 있다
정면을 향하고 있는 거북머리는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는 있지만,
주변에 정교한 솜씨로 다듬은 용머리와 힘이 넘치는 그들의 몸짓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사실감을 주며
웅장하기까지 하다
큼직한 연꽃이 앙련으로 돌려진 받침 위에 팔각 상대석을 놓고 몸돌을 안치하였다


팔각 몸돌에는 정면과 후면에 자물통이 달린 문짝과 창살문,사천왕이 번갈아 조각되어 있다
자물통은 그 안에 스님의 사리와 경전 등(法藏)이 들어 있으니 열쇠로 잠가 보호한다는 의미이고
사천왕은 그 법장을 지키는 신이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몸매의 균형이 잘 잡힌 사천왕상이 돋보인다


두툼한 지붕돌이 자칫 투박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여덟 귀의 전각을 날렵하게 들어올린 큼직한 귀꽃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성한 귀꽃이 서너 개뿐이어서 안타깝다
지붕돌 낙수면엔 합각선이 뚜렷할 뿐 다른 표현은 생략되었다
지붕돌 처마 밑에 새겨진 비천상이 그지없이 예쁘다
부도의 주인은 지금 천상의 세계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음이다


지붕돌 정상면에 이르러 복련을 두르고 상륜부를 받치도록 하였으나
현재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고 지붕돌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보개만 남아 있다
그 위에 찰주를 꽂기 위한 원공이 있은 것으로 보아 상륜부는 매우 화려했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이 부도는
혜목산 고달선원의 개산조이며 경문왕 8년(868)에 입적한 원감대사(圓鑑大師)의 부도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부도라기보다 불탑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 만큼 화려하고 장중하며 안정감이 있게 조성되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고달사지부도(高達寺址浮屠)


국보 제4호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 


고달사터에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부도이다. 고달사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된 절로, 고려 광종 이후에는 왕들의 보

호를 받아 큰 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기도 하였으나, 언제 문을 닫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탑은 바닥의 형태가 8각을 이루고 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완전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잘 남아 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基壇)은 상·중·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는데, 특히 가운데돌에 새겨진 조각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돌은 8각이라기보다는 거의 원을 이루고 있으며, 표면에 새겨진 두 마리의 거북은 입체적으로 표현되어 사실감이 느껴진다. 각

거북을 사이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을 새겨 두었으며, 나머지 공간에는 구름무늬로 가득 채웠다. 돌에 꽉차게 새겨진 무늬들이 과장되지

않고 세련되어 능숙하면서도 대담한 힘이 느껴진다. 가운데돌을 중심으로 그 아래와 윗돌에는 연꽃무늬를 두어 우아함을 살리고 있다.


사리를 모셔둔 탑몸돌에는 문짝 모양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새겨져 있는데, 문에 새겨진 자물쇠 모양의 조각은 밋밋하여 형식적으로

흐른 감이 있다. 이를 덮고 있는 지붕돌은 꽤 두꺼운 편으로, 각 모서리를 따라 아래로 미끄러지면 그 끝마다 큼직한 꽃조각이 달려

있는데, 크기에 비해 조각이 얕아서 장식효과는 떨어진다. 지붕돌꼭대기에는 둥그런 돌 위로 지붕을 축소한 듯한 보개(寶蓋)가 얹혀져

있다.


전체적으로 신라의 기본형을 잘 따르면서도 각 부분의 조각들에서 고려 특유의 기법을 풍기고 있어 고려시대 전기인 10세기 즈음에 세

워졌을 것으로 보인다. 돌을 다듬은 솜씨도 깨끗하고 조각에서도 세련미가 묻어나오는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