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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용문사(龍門山 龍門寺).경기 양평 본문

☆~ 절집.절터/경 기

용문산 용문사(龍門山 龍門寺).경기 양평

푸른새벽* 2007. 1. 18. 00:46

 

 











 

 











 

 






 






 






 






 






 











 

 






 











 






 






 

 






 






 






 












 

 






 





 
용문산 용문사(龍門山 龍門寺)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5


용문사는 649년(진덕여왕 3)원효대사가 창건하고,892년(진성여왕 6) 도선국사가 중창했다.이 창건설 외에 913년 대경대사 창건설은 중창이었을 가능이 크다.『양평군지』에 따르면 차언 당시 당우가 304칸에 300여 스님들이 머물렀다고 하는데 지금의 터를 살펴보건대 300여 칸의 당우가 들어앉기엔 터무니없이 좁은 공간이다.다만 산내 암자가 넷이나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들 암자터까지 포함한 것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그뒤 약 450년간의 기록은 찾을 수 없고 훌쩍 1378년(우왕 4)지천(智泉)대사가 개풍 경천사(敬天寺)에 있던,우왕이 원각(願刻)한 대장경판을 이곳으로 옮겨 3칸짜리 대장전을 짓고 봉안했다는 데로 이어진다.1395년(태조 4) 조안(祖眼)대사가 중창하는데,바로 그해 천마산 적멸암에서 조안대사의 스승 정지국사가 입적한다.천마산 적멸암에서 입적한 정지국사 부도가 용문사에 세워진 내력은 비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용문사는 1447년(세종 29) 수양대군의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를 위해 보전(寶殿)을 짓고 불상 2구와 보살상 8구를 봉안했으며,이듬회 경찬회(慶讚會)를 베풀었다.이 경찬회 법회에서 참석해 기도하던 수양대군은 불사리의 방광을 목격하고 원찰로 삼았다고 전한다.이어 세조와 성종을 비롯해 왕실에서 종종 중창했으나,1907년 의병의 근거지로 사용되다가 일본군들이 불태우는 비운을 겪는다.취운스님 등이 재건을 거듭해 내려오다 1950년 한국전쟁 때는 승패의 분수령이 되었던 용문산 전투를 치르면서 많은 피해를 입는다.용문사의 자취에는 역사의 굴곡만큼이나 비극이 서려있다.


1958년 이후 재건해 오늘에 이른 용문사 경내에는 대웅전.산신각.종각.요사채가 있으며 보물 제 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 부도와 부도비,산신각 동쪽에 5기의 부도가 있고 절마당 아래로는 수령 1100년쯤을 추정되는 용문사 은행나무가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