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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명전(通明殿).서울 창경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통명전(通明殿).서울 창경궁

푸른새벽* 2007. 2. 4. 21:33

 

 

 

 

 

 

  

통명전(通明殿)


환경전.경춘전의 북서 방향으로 내전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통명전이 있다.창경궁 내전의 으뜸 건물로『宮闕志』에서는'通明殿卽昌慶宮內正殿'이라 하였다


창경궁이 대비들의 거주 공간을 목적으로 창건되었기에 특히 내전 건물의 명확한 성격 구분은 모호한 점이 있다.여러 기록과 건물들의 특징 등을 고려해 볼 때,대체적으로 통명전은 창덕궁 대조전과 같은 중궁전(中宮殿),환경전은 왕 또는 세자 등의 침전,경춘전은 왕후 또는 세자빈 등의 침전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인 통명전은 창경궁 창건 당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광해군 8년(1616)에 중건되었다.그러나,다른 내전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인조 2년에 이괄의 난으로 다시 불탔으며,그 복구는 인조 11년(1633)에 이루어졌다.이때의 공사 내역을 기록한 『昌慶宮修理所儀軌(창경궁수리소의궤)』에 의하면,통명전은 인경궁의 청와전(靑瓦殿)을 옮겨 지었다.또한, 통명전 서책방(書冊房)은 인경궁 함인당(涵仁堂)의 대청 앞 툇간과 헌잠당(獻箴堂)온돌을 옮겨서 조성하였으며 통명전 동행각은 역시 인경궁 함인당의 서온돌과 진연청(盡筵廳)북월랑을 옮겨지은 것으로 기록하였다.그러나 통명전은 정조 14년(1790)에 다시 소실되었으며 그 후 40여 년이 지난 순조 34년(1834)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향으로 앉은 통명전은 마당에 박석(薄石)을 깔고,장대석을 세벌대로 쌓아 규모 있게 월대를 구성하였다.창경궁 내전 건물 중 유일한 월대인데 건물 쪽 깊이(남북)방향으로 20척 정도로 연회나 의례가 가능한 공간이다.월대 윗면에는 박석을 깔았으며,바깥쪽 양 모서리에는 청동으로 만든 드므를 놓았다.월대 앞면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소맷돌 없이 다섯 급으로 세 군데 놓았는데 가운데 계단의 좌우 폭이 양쪽 계단보다 다소 길다.월대 동쪽으로는 다시 두벌대와 한벌대의 넓은 기단이 2중으로 이어져 양화당의 기단과 통하도록 설치되었다.그 기단 아래 위로 크고 작은 우물이 하나씩 남아 있다.월대 안쪽에 다시 장대석 한벌대 기단을 놓고 네모꼴 초석에 네모기둥을 세웠다.공포는 이익공 양식이며,겹처마에 팔작 지붕이다.경복궁 강녕전.교태전.창덕궁 대조전과 같이 지붕 용마루는 얹지 않았으며,합각마루와 추녀마루를 양성하여 용두와 잡상을 배열하고 사래에는 토수를 끼웠다.『宮闕志』에서는 통명전 지붕을 '無樑閣(무량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용마루를 짜지 않았다는 의미이다.건물 정면의 툇간 3칸은 개방하였으며,각 칸마다 기단에서 마루로 오르는 디딤돌을 놓았다.「東闕圖形」에 의하면 건물의 평면은 전후 좌우로 툇간을 형성하고 가운데 3칸을 대칭으로,그 좌우를 온돌방으로 구성하였다.그러나,최근까지 내부 전체가 개방되어 있었으며 바닥면에는 우물마루가 깔려 있는데 이는 일제 강점기 때 이곳을 진열실로 쓰기 위해 아궁이를 막고 온돌을 들어내는 등 구조를 크게 왜곡시켰기 때문이다.최근에 좌우 온돌방 부분의 마루를 들어내고 방으로 복원하였다.툇간 부분의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그 안쪽 대청 부분의 천장은 우물천장,온돌방 부분의 천장은 종이천장으로 마감하였다.건물 정면 가운데 3칸은 창호 없이 개방하였고 그 좌우 한 칸씩은 각각 머름 위에 정자살 창호 네 짝씩을 달았다.정면 양끝 칸에도 머름을 놓고 정자살 창호 두 짝씩을 달았으며,교창은 모두 빗살이다.개방한 툇간 안쪽,즉 대청 부분의 사분합 창호와 온돌방 쪽 툇간으로 드는 두 짝씩의 창호는 모두 띠살 창호이다.건물 양 측면과 뒷면에도 모두 정자살 창호를 네 짝 혹은 두 짝씩 달았으며,교창은 모두 빗살이다.건물 좌우 즉,서쪽의 연못과 동쪽의 양화당 쪽 앞 툇간에는 머름을 들이지 않았다


통명전 서쪽에는 호안석 위로 하엽동자와 꽃봉오리 등을 정교하게 조각한 난간기둥을 세워 돌난간을 두른 자그마한 연못(池塘)이 있다.남북 길이 13m 남짓,동서 길이 5m정도의 장방형인데,연못 안쪽 네 면은 장대석을 쌓아 마감하였다.연못 위로는 남쪽으로 치우쳐 길이 6m남짓,폭 2.5m 정도의 돌다리를 놓았는데 연못 중앙 부분을 약간 볼록하게 들어올렸다.연못 안에는 괴석을 심은 석분(石盆) 2개와 남쪽으로 앙련대석(仰蓮臺石)하나가 서 있다.이 연못에서 북쪽으로 5m남짓 거리에 샘이 솟아나고 있어 둥근 화강석을 다듬어 우물돌을 놓았다.이 샘물은 직선으로 연결한 석구(石溝)를 따라 흐르다가 작은 폭포를 이루며 연못으로 든다.통명전 뒤뜰 서쪽으로 화계 아래에도 샘이 솟는데 장대석을 쌓아 우물을 형성 하고 우물 바로 뒤 화계를 쌓은 돌에 '열천'이라 새겨 놓았다


통명전 서쪽 방향의 언덕 위로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구획 짓는 담장을 둘렀으며 그 담장 남쪽 방향에 창덕궁으로 통하는 함양문(涵陽門)을 세웠다.통명전 북쪽 뒤 높은 언덕은 석단(石壇)으로 층을 이루어 화계로 구성하였으며 그 언덕 위에 자경전(慈慶殿)이 있었다


통명전에서는 명종의 비 인순왕후(仁順王后)심씨가 승하하였다.인조는 재위 11년,창경궁 내전 일곽을 중건한 후 10년 가까이 거처했던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이어하여 이곳 통명전에서 머물렀다.또한,이곳에서는 경춘전에서 정조가 태어난 영조 28년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맏아들이자 정조의 형인 의소세손(懿昭世孫)이 세 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통명전 편액의 글씨는 순조의 어필(御筆)인데,편액 가장자리의 문양이 특히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덕수 지음 '新궁궐기행'중에서*

 

창경궁통명전(昌慶宮通明殿)


보물 제818호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창경궁 


창경궁 안에 있는 왕의 생활공간으로 연회 장소로도 사용했던 곳이다. 조선 성종 15년(1484) 처음 지었던 건물이 임진왜란의 피해로 불에 타 버려 광해군 때 고쳐 지었으나 정조 14년(1790) 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순조 34년(1834) 창경궁을 고쳐 세울 때 같이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7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지붕 위에 용마루가 없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뻗쳐 나온 재료 구성이 조선 중기 양식의 특징과 정결한 건물의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건물 왼쪽으로 돌난간을 만들어 놓은 연못과 둥근 화강석을 두른 샘, 건물 뒤쪽에 꾸민 정원이 한층 더 정감 어린 풍경을 만들고 있다. 궁궐 안 내전 중 가장 큰 건물로 옛 격식을 잘 보존하고 있으며 19세기 건축 양식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문화재이다 
*문화재청자료*

 

 

 

 *통명전 정전

가운데 툇간 세 칸은 개방하였다

 

 

 

 

 *통명전 편액

순조의 어필(御筆)이다.대청 안 뒤쪽으로 가운데 칸에도 커다란 현판이 걸렸는데,글씨체가 다르다

 

 

 

 

 *통명전 툇간의 가구

들보와 서까래를 그대로 드러냈다

 

 

 

 

 *통명전 서쪽에 조성한 연못

호안석 위로 돌난간을 두르고 돌다리를 놓았다.「동궐도」에서 통명전은 그 터만 그렸으나,이 연못은 표현하였다

 

 

 

 

 *연못 호안을 따라 두른 돌난간

난간기둥 사이에 하엽동자와 돌난대를 정교하게 조각하였고 그 아래 궁창부에는 안상을 음각하였다

 

 

 

 

 *돌다리를 경계로 연못 남쪽에는 앙련대석 하나를,북쪽에는 괴석을 심은 돌화분 둘을 장식하였다

 

 

 

 

 *연못 북쪽에는 맑은 샘이 솟는다.큼지막한 화강석을 둥글게 다듬어 우물돌을 놓고 돌을 파서 만든 물길을 연못까지 직선으로 연결하였다

 

 

 

 

 *연못으로 물이 드는 입수구

북쪽 샘물이 석구를 따라 흘러 작은 폭포를 이룬다

 

 

 

 

 *통명전 뒤쪽 굴뚝과 화계(花階)

굴뚝돌을 배치하였고,그 사이에 또 샘을 팠다.이 샘에는 기둥을 세웠던 듯 주초석이 남아 있다.우물 바로 뒤 화계를 쌓은 돌에는 '冽泉(열천)'이라고 새겼다.「동궐도」에 표현된 바에 따라 추정해 보건대, 이 화계 너머 언덕 위에는 자경전이 있었다

 

 

 

 

* 冽泉... 맵도록 차디찬 샘물이라는 뜻이다